1. 두근두근 희망법, 두 번째 만남
‘와, 내가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생으로 출근하게 되다니!’
민변에서 자원활동하면서 희망법을 알게 된 이후, 나에게 있어 희망법은 ‘법을 통해서 인권운동하는 멋진 언니오빠 모임’이었고 줄곧 동경해왔었다. 그리고 당시 희망법 실무수습생이던 지인을 따라 희망법 총회에 참석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생애 첫 후원을 희망법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 나와 희망법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 이제는 로스쿨생으로서 동경하던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떨리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두근반 세근반,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던 첫 출근!
첫 출근 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공간과 사람들이었다. 나의 예상과 다르게 희망법의 물리적 공간은 가정집에 가까운 곳이었다. 업무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진짜 집’에서 사무실이 운용된다는 점이 신기했다.
첫날 우리(실무수습생들)는 구성원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구성원들끼리 서로 별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들도 그 별칭으로 불렀으면 한다고 해서 당황했었다. 호칭에서부터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희망법의 면면이 느껴졌다. 처음엔 나이도 신분도 다른 사람들을 친구처럼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송구스럽기도 했지만 차츰 적응되자 장점이 많은 문화였다. 상호존대를 기본으로 하고 서로 별칭으로 부르게 되니 희망법 구성원들이 실무수습생들을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로서도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대하게 되었다.
2. 실무수습생의 특전, 내부교육과 과제
실무수습생들은 전반부에 6회에 걸쳐 내부교육을 받는데,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님들에게서 중점 영역에 대한 소개, 관련하여 직접 수임했던 사건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였다. 특히 쓰(서선영 변호사)의 ‘집회시위의 자유와 형사절차’ 교육은 이후 공동과제 할 때 수시로 참고할 정도로 큰 도움이 되었다.
희망법에서 주최한 ‘제4회 공익인권법실무학교’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큰 혜택이었다. 특히 김수정 변호사의 ‘공익소송의 기획과 수행’, 성적지향·성별정체성(SOGI)팀의 ‘동성혼소송의 이론과 실무’, 공개 좌담회 ‘활동가와 변호사가 만났을 때’ 등의 프로그램이 좋았는데,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변호사의 공익활동에 대해서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공동과제로는 진행 중인 행정소송 사건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서면을 작성하는 과제가 부여되었는데,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만큼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실무수습생들과 많은 시간을 토론에 할애하면서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담을 수 있는 ‘공동작업의 맛’을 느꼈다.
또한 과제 부여시 뿐만 아니라, 과제 작성 과정과 이후에 담당자인 쓰와 적극적으로 의사소통 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이 때 서면으로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서 ‘어떤 주장을 할지’, ‘어떤 근거로 주장을 뒷받침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같은 주장을 소송의 어느 단계에서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한지’ 등에 대해서 엄밀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3. 성적지향·성별정체성(SOGI) 팀 활동
다섯 명의 실무수습생들은 각 관심분야에 따라서 지도변호사를 배정받고, 지도변호사와 일정과 개별과제 등을 조정하게 된다. 나와 소윤(백소윤)의 경우에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 팀의 미니(류민희 변호사)가 지도변호사였고, SOGI(Sexual Orinetation and Gender Identity) 인권을 중심으로 개별과제와 외부활동을 수행했다.
# 개별과제
우리가 부여받은 개별과제는 인권위에 제출하는 진정서 초안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소윤도 나도 인권위 진정서는 처음 작성해보는 것이고, 본래 진정서의 형식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목차를 잡는 데 혼났던 것이 기억한다.(웃음) 또한 공방이 오가는 서면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위에 기각과 각하의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도 무리한 주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점이 어려웠다. 예상 가능한 반대 주장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 주장하지도 않은 점에 대한 대비로서 촘촘히 주장하는 전략의 난점이었던 것 같다. 이에 우리는 헌법 기본권 사례형으로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기본권 침해보다는 덜 엄격하게 차별과 인권침해를 인정해 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설득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실은 이 서면을 실무수습 기간 내내 잡고 있었는데, 막상 글을 작성하는 데 보다는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기초적인 자료 조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던 것 같다. 그 과정이 막막하기도 했지만 필요한 자료를 콕 집어 찾아냈을 때의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해당 사안과 연관 있는 인권위의 진정례, 의견서,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뒤적이면서 우리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 논리를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이 과제를 하면서 소윤에게 정말 많이 배웠는데, 특히 우리 사실관계에 맞추어 엄밀하게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전개하는 등 본격적으로 서면 작성시 소윤의 역할이 컸다. 소윤이 없었으면 어떻게 서면을 완성할 수 있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능력자인 소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앞서 공동과제 때도 언급했지만, 함께 생활하는 다른 실무수습생들에게 배우는 점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각종 외부활동
실무수습생들은 희망법이 연대하는 외부활동에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내가 참여했던 것은 권영국 변호사 공판기일에 한 재판방청, 국가인권위원회 기자회견, 민변 소수자 위원회 회의, SOGI법 연구회 회의,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시민사회 연속 간담회 등이 있었다. 그 중 특히 인상깊었던 외부회의와 간담회를 정리해본다.
· 민변 소수자 인권위원회 회의 2015. 2. 10 (화) 19:00 공감
이 날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 활동가를 모시고 국가인권위 대응전략을 모색했는데, 전에 ICC 등급보류 관련하여 인권위에 대한 기자회견에 참석하였기에 인상깊었다.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 연대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미니가 혐오범죄 관련 대응 기획안을 발제하고 이에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평소 관심이 있던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Hate speech(혐오발언)와 Hate crime(혐오범죄)을 나누어 접근해야 하며, 특히 혐오발언에 대하여는 다각적인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 SOGI법 연구회 전체회의 2015. 02. 11(수) 19:30 공감
위의 민변 소수자 인권위원회와 많은 구성원이 중복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웃음). 이날 회의 중 가장 좋았던 것은 공감의 실무수습생분이 발제한 징병신체검사 신체등위 3급 판정처분 등 취소청구 및 위헌법률심판 청구 관련 검토였다. 특히 이후 이어졌던 토론에서 관련 법조문 상 ‘장애’에 관한 논의가 기억이 나는데, 흰고래님이 말했던 사회학적 의미의 장애개념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물론 지금의 법언어나 법논리가 이러한 개념을 포섭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시민사회 연속간담회 2015. 02. 12 (목) 14:00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에서 진선미 의원실의 황두영 비서관님이 발제, 시사in 장일호 기자님과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 조선경 사무관님이 토론에 참여해주셨다. 연속간담회는 총3회로 진행되며, 1회차의 주제는 <고령화 시대, 인생 궤도의 변화와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 이었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인생 시나리오가 변화함에 따라 그 수가 증가하는 결혼 이후와 결혼 밖의 돌봄관계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고, 생활동반자법이 그 일환이라는 것이 주된 발제내용이었다. 발제자는 ‘노인복지법’, ‘행복노후법’, ‘노인사랑보장법’ 등의 표현을 통해 법안의 주요 수요층과 타겟이 노령인구임을 밝혔다.
나는 생활동반자법이 메워야 하는 법의 공백은 결혼제도 밖의 돌봄관계라고 생각한다. 이에는 결혼하고 싶으나 결혼할 수 없는 성애적 관계(동성커플 등),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성애적 관계(비혼커플, 노인커플 등), 그 밖의 비성애적 관계(다양한 비혈연적 돌봄관계 등)가 있을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을 가장 필요로 하고, 향후 법이 제정되면 제도를 적극 활용할 사람들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노인커플이 아니라 비혼커플이나 결혼하지 못하는 동성커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은 토론시간에 제기되었고, 나 역시 공감하는 바이다. 아마도 동성혼이나 비혼동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반발을 우려한 입장일 수도 있다고 짐작되나, 잘못된 타겟팅으로 인하여 제정된다 하여도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법이 될까 우려스러웠다. 이후의 간담회에서 이러한 의구심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4. 그리고 또 만나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간의 실무수습기간이 어느새 지나가버렸다.
동경하던 선배들 곁에서 배울 수 있다는 설렘, 미미한 법학지식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다음 학기 예습을 하지 못한 채 한달 간 실무 수습하는 것에 대한 걱정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 실무수습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런저런 걱정을 뒤로하고 ‘그래도 1학년 겨울방학에 하고 싶은 일 해보자!’하고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하는 것을 밀어붙였던 것은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실은 나는 비법학사 출신으로 법학지식이 전무한 채 로스쿨에 입학해, 작년 1년 동안 공부의 어려움에 정말 몸과 마음고생이 많았다. 부끄럽지만 법서와 판례들에 파묻혀 내가 애초에 왜 로스쿨에 오고 싶었는지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도 많았다. 한 달 동안의 즐거웠던 순간, 가슴이 벅찬 순간,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들을 모쪼록 소중하게 간직해서 앞으로의 지난한 수험생활을 지혜롭게 꾸려나가고 싶다.
한 달 동안 밥 차려주시고,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침 주신 희망법 식구들, 그리고 아옹다옹 살갑게 지냈던 실무수습 동기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우리 또 만나겠죠? ^_^
글 _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년
진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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