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수습 후기] 희망법 forever
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하게 되면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왜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하게 되었는가?” 매번 같은 대답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은 이 시대의 인권 문제를 현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고 답했고, 가끔은 공익인권변호사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끔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이끌었던 것은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공익기금을 발판으로 일궈낸 조직이라는 점, 개인 후원 중심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꾸러가고 있다는 점, ‘공익인권변호사모임’다운 중점사업들이 점점 추려지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런 마음을 부추겼습니다.
희망법에서의 시간들
첫 출근을 하던 날, 지도관이었던 김동현 변호사도 제게 그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 희망법에 왔느냐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말입니다. 아마 이것저것 많이 구경하며 배우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희망법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여러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 기간은 그러한 제 바람에 꼭 부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최윤아실무수습생이 자신없어 하면서 만든 점심식사. 하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구수한 된장국과 신선한 샐러드.
희망법에서는 매주 구성원들의 일정을 공유해 주고 함께할만한 다양한 활동들을 추천해주었습니다. 각종 회의나 강연회•설명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장 단계에서부터 상고이유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면들도 작성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작성한 서면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까지 함께 하다 보니 사건을 대하는 자세와 서면 작성 기술도 점점 나아졌습니다. 또한 여러 회의들에 꾸준히 참여하다 보니 처음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제 모습도 조금씩 변해 점차 회의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회의들에 참석하여 토론회 준비부터 후속 작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운 노동인권문제를 공부할 수 있었고, 장애인권리협약 최종견해 설명회에 참석하거나 자유권규약 위원회의 심의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제인권법의 구조와 관련 이슈들을 밀도 있게 배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KT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회에 참석해서 열심히 자료를 읽고 있는 최윤아 실무수습생(자료에 얼굴이 가렸군요^^)
또한 경찰의 집회방해를 이유로 한 국가배상 사건이나 각종 일반교통방해•공무집행방해 사건들의 서면 작업, 권영국 변호사 재판 방청 등을 통하여 집회•시위에 관한 생각들을 차근히 정리해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집회•시위의 배경이었던 2008년 촛불,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등 굵직한 사건들의 사회적 맥락과 대응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장애인법연구회의 기획 소송 준비 및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서의 상담을 통하여 장애 당사자들이 겪는 문제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고, 관련 리서치 작업들과 회의 참여를 통하여 이에 관한 활동가와 법률 전문가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자료 발간회 및 토론회 준비를 함께 하거나 민변 여성위원회 회의를 참관했던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적소수자 분야에서의 일들도 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군형법 위헌제청 사건이나 동성혼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해보았던 것도 참 좋았지만, 특히 트랜스젠더 병역처분 취소 사건을 함께 하다가 법정에서 사건 당사자와 함께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입니다. 희망법이 하는 일들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삼 피부로 느껴진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송별회 날 있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에 더욱 분노하였던 것이겠지요.
어쩌면 오해, 그래도 희망법
어쩌면 제가 처음 생각했던 희망법의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오해였는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사랑스러웠지만, 정작 희망법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그 정체성을 찾아내고 이름붙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기사 속 사진에서는 언제나 밝게 웃고 있던 사람들도 가끔은 초췌했고 가끔은 말이 없었으며 자주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희망법은 역시 ‘희망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며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공간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 나가며 치열한 고민으로 다듬어 가고 있기에 더 매력적이고, 힘들고 막막한 순간에도 첫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꾸준히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기에 더 응원하고 싶은 그런 공간 말입니다. 그렇기에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 기간 동안 정말 즐겁게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쭈뼛쭈뼛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여닫던 제가 이제는 ‘불만을 말해 보라’는 장난 어린 독촉에 한 바가지씩 불만을 퍼부을 수 있을 정도로 이 공간이 제법 편해졌습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아쉽게도 빨리 지나갔네요. 짧다면 짧을 시간 동안 행복하고 진한 기억들을 만들어 준 희망법, 정말 감사합니다.
윤아와 희망법 사람들이 함게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윤아와 함께한 시간은 희망법에게도 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윤아를 통해 신선한 자극도 받았고 희망법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윤아. 고맙습니다.
희망법 forever
실무수습이 끝나고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스무 날이 걸렸습니다. 수습 후기는 꼭 써야지 다짐했음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핑계 삼아 미뤄왔던 것입니다. 못된 습관이지요. 반드시 해야만 하고, 꼭 하고 싶은, 정말 중요한 일임에도 시시하게 재촉 당하는 일상에 쫓기다보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게 됩니다.
어쩌면 저는 인권을 말하는 일에도 그래 왔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당장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을 표방하는 희망법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도 사실은 그런 습관의 반작용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두 달여 간 희망법에서 만났던 얼굴들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답게 사는 일을 미루지 말자고, 내 이웃을, 나와 당신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내몰리게 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제 못된 습관과 닮아 있다면, 우선 희망법과 함께 하는 일부터 시작하길 바랍니다. 저도 이제 실무수습생이 아닌 조용한 후원자로서 희망법과 함께 하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희망법 forever.
글_최윤아(사법연수원 44기)
'희망법 활동 > 교육/공익인권법실무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무수습] "그리고 또 만나요" (0) | 2015.03.10 |
---|---|
[실무수습] 희망은 어떻게 만들까요? (0) | 2015.03.09 |
[실무수습]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0) | 2014.08.11 |
[실무수습] 장애인권팀과 함께한 실무수습기 (0) | 2014.08.05 |
[실무수습] MTF 트랜스젠더 병역면제취소사건 지원과정 참관기 (1) | 201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