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팀과 함께한 실무수습기
#1 희망의 조각을 안고
6월 30일, 첫 출근!
설렘 반 기대 반 들어선 1030호! 익숙한 공간과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회의실에서 4주간 함께 할 실무수습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공감인권법캠프와 실무학교에서 만났던 이대 로스쿨 5기 송지은! 그리고 다른 실무수습생 두 분은 전남대 로스쿨에서 온 같은 기수이자 같은 조였다(전남대 로스쿨 5기 최현정, 이종국). 두 사람씩 아는 사이인 덕분에 금방 친해져서 돈독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첫 날은 실무수습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계시는 교육부서장 조혜인 변호사님이 OT를 진행하셨다. 희망법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에 구성원들끼리 서로 별칭을 부른다고. 처음엔 괜히 반말하는 것 같고 어색해서 얼버무리기 일쑤였는데, 익숙해지니 변호사님들과 마음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는 느낌도 들고, 나중에는 편해져서 정말 좋았다.
수연씨는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물어보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엄’이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엄’이 되었다. 팀은 장애 인권팀에 배정되었는데, 담당 변호사님은 김재왕 변호사님이셨다. 김재왕 변호사님께서도 그냥 ‘왕’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하시기에 4주간 ‘왕’을 왕으로 모셨다.
희망법 실무수습 환영회식 장면
#2 왕과의 외부활동
왕이 지도변호사 개별 면담을 하시면서 앞으로 실무수습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을 알려주면 참고하겠다고 하셨는데, 외부활동이 있으면 열심히 따라 다니면서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전적으로 수용하시고 거의 모든 외부활동에 데려가주셔서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하게도 실무수습 첫 2주 동안은 뭇 아이돌 부럽지 않은 빡빡한 외부활동 일정이 잡혀서 나의 바람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하겠다. 하루에 외부회의가 3건이나 있는 날도 있었으며, 토론회, 단체와의 연대 등 왕이 소화해야 할 외부 일정이 정말 많았다. 또한 신기했던 점은 단체 이름이 각각 다르고, 회의 장소도, 회의 주제도 다 다른데, 가보면 그 구성원들은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특히 자주 뵈었던 분들로는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님, 동천의 김용혁 변호사님, 따뜻한 당신의 조아라 변호사님, 경기도 장애인인권센터의 김주경 변호사님 등이 계신다. 그리고 평소 뵙고 싶었는데 외부활동을 따라다닌 덕분에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님을 뵐 수 있어서 좋았다. 워낙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수가 적어서 어딜 가도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구조라고 한다. 모두 인재풀이 좀 더 다양하고 많아져야 한다는 바람이시다. 서론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장애 인권팀의 진짜 후기를 시작하겠다.
#3 장추련과의 연대
왕과 함께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나는 우리나라에 장애인 관련 단체가 이렇게나 많은 줄 미처 몰랐다. 나 나름대로는 장애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그저 우물 안에서 바라본 하늘이었다는 것을, 밖으로 나와서 보니 하늘이 이렇게나 넓고 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에 처음 갔던 날이 생각난다. 가는 길에 왕이, 그 곳 분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시니 가서 적극적으로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주셨다. 실제로 만나 뵈니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다들 선하고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이시라는 것. 여기 분들은 영등포구청 근처의 작은 건물 3층에 약 15개 정도의 장애인 단체들과 함께 공간을 나누어 쓰고 계신다. 그 중 장추련의 자리는 왕의 자리를 포함한 4석. 장추련의 활동가 장호동 선생님이 각 단체 분들을 일일이 소개해주셔서 한 바퀴 인사를 돌고 나니 손에 명함이 가득이었다. 명함만 받고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 아쉬움에 그 날 집에 가자마자 바로 명함을 만들었다.
실무수습 중 장추련 파견활동을 함께 한 엄수연 실무수습생
왕은 장추련과 연대하고 있어, 일주일에 1번씩 장추련에 오신다. 일주일동안 장추련에 들어온 상담들 중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법률 자문을 해주시는 것이다. 상담 사례들 중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예전에 염전 노예 사건을 듣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상담 사례는 김천 노예 할머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사건들이 지체장애인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더욱 경악했다. 특히 이런 심각한 사건들은 바로 해결할 수도 없어서 진행하다 보면 또 새로운 사건이 생겨서 병행하게 되고, 또다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병행하게 되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고. 그래서 4주간의 실무수습이 끝난 후에도, 일단 방학동안 만이라도 왕이 장추련 가시는 날에 맞춰서 계속 장추련에 가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공부가 많이 안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오히려 단체에서 만난 활동가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4 장애인 선거권 보장을 위한 노력
장애인 유권자 참정권 보장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김재왕 변호사의 모습
국가인권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이라 한다)가 공동주최하는 “장애인 유권자 참정권 보장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중심으로”가 2014. 7. 9. 이룸 센터에서 열렸다. 이룸 센터에도 장애인 단체들이 많이 있었다. 영등포에 있는 단체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장애인 단체가 이렇게 많이 있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왕은 위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토론회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참정권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권리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투표소에 접근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편의시설이 없는 경우에도 투표소가 1층이 아닌 다른 곳에 설치되어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이 있어왔고, 장애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행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 덕분에 투표소 접근성, 정당한 편의제공, 정보접근 등 장애인의 참정권을 제한했던 문제들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장애인 유권자의 선거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포함한 적극적인 개선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투표장소로의 접근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실상 투표장소로의 접근권 보장이 선거권 보장의 핵심인 것이다. 지난 봄, 발목인대가 다쳐 몇 주 동안 깁스를 했는데, 하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그 기간 중에 있어 목발을 짚고 투표를 하러 가게 되었다. 장애인들의 고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시장애를 겪음으로써 장애인의 선거권 행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이 토론회는 나에게도 의미가 컸다.
#5 4주를 마치며
희망법 실무수습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뭐니 뭐니 해도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식사 당번의 괴로움과 고충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밥을 해먹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 때문이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4주 동안 함께 밥을 먹고 나니, 이제는 나도 진정한 희망법 식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글_엄수연(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년, 희망법 2014년 하계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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