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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MTF 트랜스젠더 병역면제취소사건 지원과정 참관기

MTF 트랜스젠더 병역면제취소사건 지원과정 참관기





2014723일 오전,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MTF 트랜스젠더 A씨에 대한 병무청의 위법한 병역면제(5급 제2국민역)취소처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문제의 발단


병무청은 올해 5월 A씨에게, 2005A씨에 대하여 했던 병역면제처분을 취소하겠다고 예고했다. 올해 초 A씨의 지인을 병역기피혐의로 조사할 때 A씨가 언급되었고, 조사해보았더니 A씨는 2005년 당시 사위행위 즉, 속임수에 의해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것이다. A씨는 병원에서 성 주체성 장애진단을 다시 받아 그 진단서와 본인이 수기로 작성한 여러 장의 진술서, 어머니의 진정서, 지인들의 진술서, 각종 수술확인서를 제출하였지만, 병무청은 6끝내 위 처분을 취소하였다.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IV(DSM-IV) 성 주체성 장애로 진단된다(2013년 개정된 DSM-V‘성별 위화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징병신체검사규칙은 성 주체성 장애의 정도에 따라 3급에서 5급까지의 병역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언 상, 의사의 진단이 있으면 병역이 면제되는 5급 처분이 내려져야 한다. 위 규정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병무청은 병역면제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에 더하여 호르몬 치료와 성형 등으로 여성화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관련글 보기 : [한겨레] 트랜스젠더라고 ‘면제 판정’ 해놓고 병무청, 9년 뒤 다시 ‘군대 가라’)



그녀의 이야기


나는 79, A씨가 병무청에 제출했던 진술서 등을 읽게 되었다. 성적 지향 및 성별정체성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실무수습 지원서에 쓰기는 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몰랐다. A씨가 손으로 쓴 진술서에는 30여 년 동안의 고민과 아픔, 절망과 희망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진술서에 미처 적히지 못한 이야기들,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만 드러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더 많을 것이다.


A씨는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썼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하고 여자아이들이 입는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 중고등학생일 때에는 여자 같다는 이유로 남자아이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과 성폭력을 당했다. 정체성과 생물학적 성별의 불일치, 자신의 욕구와 사회의 요구 사이의 괴리, 성전환자에게 차가운 사회의 시선 속에서, 그는 혼자서 고민해야 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성의 외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다시 높은 벽을 넘어야 했다. 수차례의 성형수술, 장기간 받은 호르몬 요법, 여성호르몬이 들어있다는 피임약을 복용하여 겪은 부작용, 가족의 반대 등을 읽으면서, 건강은 괜찮을까 걱정하다가도, 자신의 정체성과 외모를 일치시켜나가는 과정이기에 그 모든 것을 A씨가 기꺼이 감수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변호사가 해야 하는 역할


같은 팀인 지은과 분기탱천하여 이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도중에 한가람 변호사님이 오셨다. 변호사님은 병무청 입장에서는 이러저러해서 병역기피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겠나, 그에 대하여 뭐라고 답변할 거냐고 다그치다시피 조목조목 질문을 던지셨고, 우리는 쩔쩔매며 답을 궁리했다.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이해도 인권의 기본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병무청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서, ‘당연히 인권 침해 아니냐고 선언적인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미 2005년에 성 주체성 장애진단을 받았는데도 병무청은 A씨가 속임수를 썼다고 한다. 이 병역면제취소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을, 어떤 사실관계와 법적 근거를 들어서 설득할 것인가? 매섭게 느껴졌던 변호사님의 질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변호사가 해야 할 역할, 변호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에서 나온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연대회의에서의 논의와 소의 제기


A씨의 사안은 710일과 15,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회의에서도 논의 되었다. 성소수자운동단체들이 함께 하는 위 연대회의에서, 병무청의 자의적인 병역처분 관행 때문에 MTF 트랜스젠더들이 고환적출수술을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공유되었다. A씨 사건은 결국 A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병무청이 트랜스젠더들을 병역기피자로 낙인찍고 수사함에 따라 발생한 것이므로 A씨가 동의한다면 기자회견을 하여 사안을 알리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덧붙여서 A씨에게 지원 가능한 의료적·심리적 방법들을 의논했다. 취소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도 제기하기로 했다.


이미 A씨에게 징병검사통지가 온 터라 가능한 빨리 소가 제기되어야 했다. 회의와 회의 사이에, 나와 지은은 기록을 다시 검토하고 판례들을 찾아서 사건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소장을 쓰는 것도 아닌데, 어떤 처분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청구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유리하게 인용할 수 있는 판례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확인하고 글로 정리할 때의 긴장감은 학교에서 답안지를 작성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컸다. 716, 한가람 변호사님이 작성하신 소장을 같이 보면서 오탈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완성된 소장을 접수하였다.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며


기자회견에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 법정책연구회박한희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트랜스젠더를 병역기피자로 낙인찍는 것은 단순히 병역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행한 행위를 모두 병역기피를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며 나아가 트랜스젠더가 지금까지 지내온 삶을 모두 거짓된 것이라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인격을 부정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점을 알렸지만, 서울행정법원은 725A씨에게 일단 징병검사를 받으라고 결정하였다. 취소처분이 명백하게 위법하므로 먼저 그 위법성을 판단해 달라는 우리의 주장은 배척되었다. 징병검사 결과에 따라 이후의 대응 방법과 소송의 장단(長短)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희망법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이 긴밀하게 논의하고 대응하는 과정에 잠깐이나마 함께하면서 변호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A씨의 이야기를 알게 됨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 사고의 틀이 조금이나마 깨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듣기를, 그리하여 이 소송을 계기로 사회의 편협함 역시 깨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긴 시간을 겪어낸 A씨가 이 소송의 고비도 잘 넘어주기를 바라면서, 그녀에게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_최현정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 희망법 2014년 하계 실무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