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표준사업장 내부고발자 명예훼손 사건 법정방청기
○ 법정 방청을 가며
출근 2주차 3일째, 오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민등록번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사무실에 다시 들렀다. 그날 4시 20분에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 증인신문을 방청하기로 했기 때문에, 설렘인지 게으름인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기록을 보는 척 마는 척 하고 있었다. 3시 즈음, 수습생들은 모여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있는 목동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도착하여 4시 정도까지 기다리다가, 법정 앞으로 가서 모여 있었다. 곧 사건 담당 변호인이신 김재왕 변호사님이 오셨고, 공판정으로 들어가, 그 전 사건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 사건번호, 피고인
이윽고 사건번호와 적용법조, 피고인의 이름이 불리고 피고인과 김재왕 변호사님은 법대를 바라보고 우측 자리에 나란히 앉으셨다. 그 날의 증인은 피고인을 고소한, 고소인이었다. 적용법조는 명예훼손.
그 사업장은 임금과 연차휴가를 비롯하여 장애인근로자들에 대한 처우에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이에 분노한 어떤 분은 회사에 항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를 시민단체, 정당 등 여러 단체에 제보하고 회사 앞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보이는 내부 고발자였던 것이다. 이에 회사 측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그러듯이 내부 고발자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피고소인이 바로 우리 앞에 앉아계셨던 피고인이셨다.
○ 증인신문
고소인은 증인의 자격으로 증인석에 올라왔고, 선서를 하였다. 선서를 마치고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검사의 질문은 간단했다. 피고인의 발언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여부에 관한 한 가지 질문을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검사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변호인의 차례가 되었다.
변호인인 김재왕 변호사님은 피고인의 과거 발언이 얼마나 사실과 일치하는지, 또 증인의 증언은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지 않아 신빙성 없는지를 증명해내기 위하여 많은 질문을 하셨다. 그 다음 주에도 증인신문을 방청하게 되었는데, 그 사건 또한 적잖이 어려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내부고발자 명예훼손 사건의 증인신문은 그 사건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이루어졌다.
증인신문이 오랫동안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증언의 신빙성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인의 증언내용은 객관적인 증거와 맞지 않거나, 직전에 자신이 했던 말과도 모순되었다. 한술 더 떠서, 고소인이 제출한 어떤 증거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의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증인은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했다.
증인 측 인물로 보였던 어떤 분은 변호인과, 나아가 재판장의 질문에 자신이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러시면 퇴정명령 하겠습니다, 라는 재판장의 경고 후, 기어코 그 사람은 퇴정명령을 받았고, 퇴정명령이 무언지 그 사람이 궁금해 하던, 혹은 재판장의 명령을 듣지 못하였는지 머뭇거리던 찰나, 법정경위가 다가와 ‘나가시라는데요.’라는 말과 함께 그를 법정 밖으로 안내했다.
○ 증인의 말
증인의 태도는 이러했다. 자신은 고용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고용하여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기업가이고, 기업가이기에 회사의 이윤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마음이 자라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자신은 그들을 자식과 같은 마음과 태도로 대하였다. 사업체를 경영하는 와중에 일이 융통되지 않은 부분은 있겠지만 그 부분 자신은 잘 알지 못하고, 피고인은 자신의 속마음도 몰라주면서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자기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모두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피고인은 꼭 처벌해달라는 말과 함께.
증인은 자신이 비록 성자와 같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애는 가지고 있는 마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눈감아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위와 같은 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은 증인 측 인물로 보였던(그리고 퇴정명령을 받았던) 어떤 인물의 사실상 같은 내용을 가진 두 마디의 말이었다. ‘기업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기업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는 변호인과 재판장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두 질문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을 의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제4조에서 다양한 유형의 차별행위를(비록 ‘정당한 사유’를 예외조항으로 하고 있다고는 해도)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변호인은 장애인노동자의 근로환경이 왜 이렇게 좋지 않은지,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라면 지원금을 받을 텐데, 그 지원금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증인은 장애인을 고용하여 사업체를 경영하려면 ‘이러한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답변했다. 이에 변호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퇴정명령을 받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 당신과 나
나는 정말로 악함을 알면서, 그 악함을 옳다고 생각하고 따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악함을 모르고 오히려 정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악함을 알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사정이 더 중요한 경우에 악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증인이 만약 악함을 옳다고 생각하였다면, 혹은 다른 사정이 더 중요하였다고 생각하였다면 그에 대해서 드는 감상은 많지 않다. 전자의 경우에는 비난만이 남고, 후자의 경우에는 동정과 가련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증인신문을 방청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증인은 자신의 행동이 악한지 어떤지 모르고, 정말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판기일이 끝나고 피고인께서 울분을 토하셨던 내용까지 합한다면, 최저임금도, 연차유급휴가도 그는 준수하지 않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근로기준법도 준수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했었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증인은 자신이 정말 옳은 일을 하고 있으나 부당한 비판을, 혹은 영업방해를 당하고 있는 듯이 증언을 계속했다. 증인 측 다른 인물의 태도 또한 그러했다. 나는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좋은 기업가라는 것이다.
비록 공판정 방청석에서 내가 가졌던 대부분의 감정은 실소와 냉소와 분노였으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단순히 저렇게 반응하는 것이 끝인지, 저런 사람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는 저 사람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저 사람의 위치였다면 과연 법령을 준수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넘어, 증인이 장애인 표준사업장 지원규정의 지원금 대상이 임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준 부분은 정당하다고 항변했던 것처럼, 법적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민의 의무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근로기준법은 현행의 실정법이다. 두 법은, 사회적 약자로 합의된 장애인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곳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정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가치들은 어떠한가, 실정법의 보호를 받는 가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이에 아직 이르지 못한 가치들을 나는 잘 지키고 있는가, 우리는 잘 보호하고 있는가. 차별금지법, 혐오발언금지법은 논의에만 머무르고, 남녀고용평등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이미 존재하는 법이더라도 그 내부의 조문들이 미비하여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치들이 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나타나는 많은 비속어들은 혐오 발언과 한 장의 차이만을 갖고 있다. 수습 중에 수행했던 개별 과제에서도 남녀고용평등법 상 조문이 있음에도 그 해석과 관련하여 원고와 피고가 대립하고 있었다. 과연 이것이 약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다.
○ 감상
당시 방청을 되짚어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행동은 정당한 것이다(혹은 적어도 악한 행동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쉽게 가질 것 같아서 걱정이 든다. 내 행동은 정당하다는 이유를 쉽게 갖게 되지 않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의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과 의심이 단순히 바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억압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글_김위정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기
2016년 동계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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