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법 법학전문대학원 실무수습에 참여한 서채완 실무수습생이 6명의 실무수습생 전원이 함께 수행한 공동과제의 후기를 보내왔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법은 희망을 만드는 법"이었다는 서채완 실무수습 후기를 전합니다.
공동과제후기- ‘희망을 만드는 법은 희망을 만드는 법’
1. 여행의 시작
우여곡절 끝에 제5회 변호사시험을 마치고 불광역 서울혁신파크로 3주간 여행을 떠났다. 과도한 의욕에 비해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앉아가겠다는 욕심에 탄 불광역행 버스는 꼬불꼬불 돌았다. 그리고 나는 첫 날부터 지각을 해버렸다(심지어 오후 4시까지 출근이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고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중이었던 공용회의실 구석으로 슬금슬금 들어가던 나에게 교육 담당이셨던 서선영 변호사님께서는 “우리는 일찍 오는 것은 싫어해요.” 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셨다. 참 인권적인 농담!! 비로소 ‘희망을 만드는 법에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3주였지만 실무수습 과정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매일 아침 나에게 힘을 주었던 서울혁신파크의 마스코트 ‘단추’와의 만남, 실무수습생들과 함께 방문한 여러 시민단체들,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실제 사건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었던 개별 과제 수행기, 서울혁신파크의 혹한기 체험, 맛있어서 자꾸 생각났던 불광역 최고의 맛집에서의 점심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실무수습과정에서 3주간 매진했던 공동과제를 수행하며 느낀 점을 떠오르는 대로 나누고자 한다.
2. 모법답안의 틀
3년 간 학교와 다른 실무수습에서 정해진 ‘모범답안’을 찾는 방식의 실무교육을 받았다. ‘실무교육’이라는 명목아래 판례의 태도와 형식만을 중점적으로 학습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모든 사안에 있어 ‘모범답안’은 현재 판례의 태도라고 은연중 생각하게 되었다. 즉 ‘모법답안의 틀’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동과제를 통해 공익·인권 실무에 있어서 ‘모범답안의 틀’에 갇히면 안 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김재왕 변호사님으로부터 우리 실무수습생들이 받은 공동과제는 ‘국가의 집회 주최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하여 법리적으로 다툴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자료를 수집해보는 것’ 이었는데, 법원과 국가는 우리가 다투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 즉 ‘모범답안’에 도전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김재왕 변호사님은 우리에게 “경찰이 절도범을 검거하다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요?”와 같이 비유적 질문들을 던지시거나 “저도 정답은 모르겠으니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범 답안의 틀’에 갇힌 우리 실무수습생들이 틀에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사건을 검토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물론 김재왕 변호사님께서는 이 글을 읽으시면 ‘난 그때 진짜로 몰라서 그렇게 말했는데?’라며 부인하실 것이다).
그리고 교육, 개별과제, 외부활동 등을 병행하면서 희망법 변호사님들이 사건에 접근할 때 판례만으로 쉽게 사안을 속단하지 않는 모습, 문제점이 없을 것 같은 판례에서도 불합리한 점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실무수습생들은 모범답안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 공동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3. 여러분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나는 학창시절, 탈학교 청소년 시절, 학부시절, 심지어 로스쿨에서의 생활에 있어서도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반항하곤 했다. 그런데 김동현 변호사님께서 점심을 먹으면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여러분들”이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에는 반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공동과제를 하면서 공익과 인권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공동과제를 작성하며 법원을 설득함에 있어 단순히 “부당합니다.”라는 주장은 오히려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도움이 아닌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공동과제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민사사건이었지만 자료를 수집하면서 헌법적 논리, 국제인권법적 접근, 행정법적 사고방식 등 복합적으로 검토해야만 했는데, 주장을 견고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탄탄해야함을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으면 반항 없이 공부를 할 생각이다.
4. 혼자 말고 함께
학교에서 공동과제를 할 때나 다른 실습기관에서의 공동과제는 철저한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작년 모 실습기관에서 팀별 연구보고서를 작성했을 때에는 작성 전부터 적법요건부터 본안 판단의 세부쟁점까지 인원수에 철저히 맞춰서 역할을 나눠 수행했었다. 그 결과 분명 공동으로 연구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전체적으로 연구보고서의 목적과 내용을 이해한 사람은 나를 비롯해 팀원 중 한 명도 없었다.
김재왕 변호사님께서는 공동과제를 어떻게 작성할지에 대해도 철저하게 우리 실무수습생들의 자율에 맡기셨다. 역할을 나눌까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같이 조사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수행하기로 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무수습생 한 명 한 명이 사건 모두를 이해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쟁점을 검토할 때마다 6인 모두 각각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고 모두가 받은 사건에 대해 전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조금(?) 산만한 성격으로 사안에 접근하는 나의 경우에는 동료들의 꼼꼼함과 차분함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리서치를 한 자료를 읽었을 때 놓쳤던 부분이나 다른 해석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번 공동과제 수행을 통해서 공익·인권 분야에서 활동에 있어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생각과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 배워가며 수행한 공동과제는 정말 즐거웠다.
5. 가끔은 외국인이고 싶다.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는 의미에서 외국인이 되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번 공동과제의 경우국내의 법리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국제기준과 해외의 동향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특히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집회주최자에 대한 공동불법행위 책임과 인과관계’ 부분은 국내의 선행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제적 동향과 법리를 이해해야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주장을 견고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파벳이 가득한 자료를 찾았지만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을 때 ‘내가 외국인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결국 만족할만한 튼튼한 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능력의 부족으로 우리의 논거로 하지 못했을 때 느낀 허탈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대한민국의 변호사는 대한민국 법만 확실히 알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공동과제를 수행하면서 참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6. 상대방에 대한 공감도 공감
공동과제에 대한 강평은 실무수습 마지막 날에 김재왕 변호사님, 서선영 변호사님과 함께 우리 실무수습생들이 제출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담긴 서면의 쟁점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두 분은 우리 실무수습생들이 제시한 쟁점들을 검토하시면서도 소송의 상대방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우리의 주장을 관철할 경우 소송상대방에게 불합리한 점이 발생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언급을 하셨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의뢰인의 인권과 동시에 상대방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공익·인권 변호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려는 노력은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나의 큰 자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7, 당당함과 용기
공동과제에서 법원의 태도와 상반되는 여러 가지 주장을 하면서 ‘실제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법을 모르는 멍청한 변호사라고 하지는 않을지, 실제 법정에서 나쁜 인상으로 인해 패소를 당하지는 않을지 등 의문점이었다. 강평을 하는 도중 서선영 변호사님께 위 의문점을 질문했다. 서선영 변호사님은 “판례와 상반된 주장을 한다고 해도 변호사는 당당해야한다.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서선영 변호사님은 ‘내가 이런 말을 했어요?’라고 하실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법원을 설득해야하는 입장에 많이 서게 되는 공익·인권 실무에 있어서 용기와 당당함 없이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답변이었다. 내가 ‘소심하게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선영 변호사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위 질문과 토론을 끝으로 3주간의 공동과제는 마무리되었다. 마무리를 지었음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더 견고한 논거와 창의적인 주장을 하지 못한 점, 불합리적인 침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지금 직접적으로 당장 도와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홀가분함 보다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다.
8. 맺음말: 희망을 만드는 법은 희망을 만드는 법
3주간 공동과제를 수행하면서 느낀 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희망을 만드는 법은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외받는 누군가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법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희망을 만드는 법의 변호사님들이 대한민국의 법을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에 더 큰 응원과 동참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산만하고 정신없는 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희망법 화이팅!!
글_서채완(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3년, 희망법 2016년 동계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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