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변호사로 존재하기(being)’를 경험해 본 한 달
- 희망법 2015년 하계 실무수습 후기 -
글_하준영(유월)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년, 희망법 2015년 하계 실무수습생
나는 왜 희망법에...
로스쿨 2학년들은 1학기 말쯤 안부를 묻는 인사가 “실무수습 어디 가세요?”이다. 내가 항상 “희망법이요.”이라고 대답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대부분 되묻지는 않는다. 그저 속으로, ‘아, 또 그런(?) 곳 가나보네.’라고 생각할 뿐. 이미 학교에서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나는 왜 또 그런(?) 곳인 희망법에 지원하였는가. 그런(?) 사람이 그런(?) 곳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로스쿨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나의 자기소개서를 본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건 알겠는데, 네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왜 굳이 '변호사'가 되어서 해야 하는 거야?”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사람에게 이보다 안 좋은 평이 있을까? 나는 인권변호사를 꿈꾸면서 ‘인권’에 대해 늘 고민해왔지만, ‘변호사’에 대한 고민은 매우 부족했던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법을 보수적인 것, 수단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결국 ‘내 것은 아닌 것’으로만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로스쿨에서 오정진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고, 나는 다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공익인권변호사의 존재함(being)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랬다.
당연한 결혼에 대한 당연한 권리 싸움
- 동성 간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신청 소송
퀴어문화축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희망법 SOGI팀은 동성혼 소송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변호인단 회의,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회의 등이 이어졌고,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였다. 회의를 계속 참여하면서 느꼈던 것은 정말 세세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떤 부분은 ‘저렇게까지 생각할 거 있나’ 싶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누군가는 반드시 준비했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에는 비송이기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되어 법정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법원에 입장하는 장면을 보고, 기일 후 기자회견에 참여하여 그 날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끼고 왔다. 그날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기자 있는 기자회견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만큼 기자들이 꽤 많이 참석했다. 실제로 기사로 나간 것은 연예기사가 많았지만.
기자회견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이 눈물을 보이셨다. 기사도 많이 나갔지만, ‘37년’ 발언은 정말 사람들을 울컥하게 했다. 플래시가 터지는 기자회견에서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법적으로는 정말 대단한 것도 아닌 ‘혼인신고’가 이들에게는 이렇게 어렵다는 사실이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우리를 또 한 번 울리지 않았을까. 2013년 9월 광통교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했다. 기쁨, 벅차오름, 슬픔, 억울함 등이 섞인 눈물을 보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옆 사람이 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울긴 왜 울어’라고 말하며 더 크게 울고 있던 그들의 모습을 기자회견 현장에서 다시 보았다.
<동성혼 소송 심문기일 기자회견에서 '평등' 피켓을 들고 있는 하준영 실무수습생>
그리고 당연히(?) 나에게도 이번 소송의 서면을 검토할 기회가 주어졌다. 헌법 제36조 제1항의 “양성평등”에 대한 해석과 민법 조항들의 “부부”에 대한 해석이 주요 쟁점이었다. 한상희 교수님의 헌법해석과 같이, “양성평등”은 역사적으로 동성을 전제하지 않고, 이성 혼인 관계에서의 양성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에 꼭 이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신청인 측의 주요 논지였다. 이렇게 헌법 제36조 제1항은 동성혼을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반면, 피신청인의 주장은 혼인은 가족을 전제로 한 것이고, 가족의 핵심은 “공동의 자녀 출산 가능성”이다. 따라서 동성 커플은 가족을 이룰 수 없기에 혼인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는데,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나는 먼저 모든 사람이 성적 존재(sexuate being, Drucilla Cornell)임을 전제로, 헌법 제36조 제1항의 “양성 평등”이 양 당사자 간의 “성적 평등”임을 주장하였다. 또, 가족에 대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피신청인의 가족의 핵심이 “공동의 자녀 출산 가능성”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또, 피신청인은 동성혼이 인정되면 부(夫)가 부(婦)가 될 수 있어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부부(夫婦)간 법적 효력의 차이가 없는데도 이를 구별하려 드는 태도는 성별이분법에 기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분히 여성차별적 시각이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하였다. 서면을 쓰면서 최대한 새롭게 접근하려고 했고, 그 때문에 글이 다소 난해해지기도 했다. (짧게 요약해서 설명해놓은 것을 보니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검토하면 할수록 이상하게도 나는 충분히 해볼 만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들었다. 자기 논리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좀 더 많이 열어놓고 싶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언어에 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안 되는 것’으로 단정지어 가두어버리고 싶진 않다.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 아픈 그 이름, 군대...
희망법에서 처음 받은 과제는 군 인권과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나에게 군대는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 군대를 가야할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또, 군 인권과 관련해서 아픈 기억도 하나 있는데, 작년 동천 공모전에 군 인권을 주제로 공모했다 떨어진 기억이 있다. 그 때 심사위원이 한가람 변호사였는데, 여기에 와서 한가람 변호사로부터 군 인권 관련 과제를 받아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군대를 떠올릴 때 머리가 아픈 이유는 비단 개인적인 이유에만 있지는 않다. 성소수자와만 관련된 주제를 크게 두 가지를 접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취소처분이고, 다른 하나는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개정 전부터 계속 문제되어 왔고, 지금도 사실 어떻게 접근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주제이다.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취소처분은 비교적 최근 이슈이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희망법에서 진행한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취소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병무청은 판결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취소 처분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라도 걸려라’며 마구잡이식으로 하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해 희망법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고, 나에게 이 진정에 대한 추가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졌다. 군 면제를 위한 ‘성 주체성 장애’를 증명하기 위해서 성전환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줌은 물론, 국제규범에 따른 ‘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의견서를 작성하였다. 사실 이 과제를 하면서는 여러모로 불안을 느꼈다. 군대라는 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스스로의 마음과, ‘정말 잘못된 “하나”가 걸리면 어떡하나’하는 마음 등이 섞여서였던 것 같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 부산대학교 대자보 훼손 사태로 본 혐오표현/혐오범죄
부산대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Queer In PNU, QIP)의 대자보가 훼손되는 사태가 계속해서 발생하였고, 나를 비롯한 로스쿨생들과 QIP 및 학내 단체들은 지난 학기 동안 이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렇지만 대자보 훼손 행위는 계속 되었다. 아니, 더 진화한 형태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고민을 계속 안고 있었던 나는 이 고민을 풀어놓았고, 희망법 SOGI팀은 한 달간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계속 제공해주셨다.
우선, 사회적으로 혐오표현과 혐오범죄가 문제되어서인지 관련한 포럼/세미나 등이 많이 열렸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7월 이주여성인권포럼, 서울시 인권위원회 세미나 등에 참석하여 혐오표현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혐오표현/혐오범죄는 비단 성소수자뿐 아니라 여성, 이주민, 장애인에게도 나타나는 것이었다. 각 단체에서 겪고 있는 혐오표현들이 어떤 유형이고, 어떤 수준인지 등의 발표들도 들을 수 있었다. 또, 혐오표현에 대해 ‘성적 편견’, ‘차별 선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더 좁고 세밀하게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혐오표현/혐오범죄에 대한 대응 보고서를 작성하여 마지막 주에 SOGI팀과 함께 사례회의를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짬짬이 어떤 대응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해 리서치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주제로 연구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활동했던 내역과 남아있는 고민거리 등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혐오표현과 관련된 논의는 항상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부산대에서도 논의가 여러 맥락으로 흘러갔다. 혐오표현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혐오세력을 밖으로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혐오표현만으로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법적, 사회적 수단이 사실상 없었다. 그런데 사실 대자보를 훼손하는 행위는 사실 혐오범죄로 보아야 한다. 사례회의에서 역시 이는 전형적인 반달리즘(vandalism)의 모습으로 혐오범죄로 규정하여 접근하여야 한다고 논의가 진행되었다. ‘다가올 2학기에는 또 어떻게 해야하나,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어야하나’ 등 걱정이 쌓여가던 차에 사례회의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희망법 어떤 거 같아?
실무수습을 마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또 희망법 구성원들로부터 참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래서 희망법 어떤 거 같아?” 그러면 나는 농담처럼 이렇게 답했다. “나는 못하겠는데?” 희망법 변호사들을 한 달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이분들 서면은 언제 쓰시는 거지...?’ 사무실에 앉아 있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였다. 토론회, 회의 등 일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실무수습생들도 챙겨주어야 했다. 우리는 농담처럼 참 폐를 많이 끼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나의 한 지인은 희망법에서 구성원 8명이 SOGI, 장애, 기업과 인권, 집시법 등 분야를 다루고 있다고 하니 크게 놀랐었다. 겨우 8명이 다 하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후원을...!) 밖에서 보기에도 놀랍다고 하는데, 안에서 지켜봤을 때는 어땠을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희망법이 너무 바쁘고, 희망법 같은 곳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매우 슬픈 일이다. 하지만 희망법에서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들려는 너무나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얻어가는 것들
항상 어떤 활동을 할 때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달 간 함께 한 동료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들로 남았다. 더운 회의실 공간을 공유하며, 낄낄거리며, 공동과제로 함께 고통 받았고,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고, 에버랜드 현장답사(?)까지 함께 다녀왔다. 희망법에 뽑힐 사람들이라면 다들 대단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선함을 믿지 않는 나에게 선함을 보여준 수(이수연), 리더십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병민(정병민), 우리의 편안한 소통을 많이 도와준 경환(고경환). 서로의 이야기를 좀 더 나눌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어 정말 아쉬웠다. 다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고민을 안고 실무수습을 시작했으니 마지막에는 ‘이 고민의 답을 찾았다!’라는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아니다. 실제로 과제 평가 중 “변호사의 서면이라기보다는 활동가의 글 같다.”는 평도 있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자신감이 뚝 떨어지는 것 같지만, 나에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활동가인 적도, 법률가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분명 나는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사실 부산에 있을 때는 자신이 많이 없었는데, 실무수습 기간을 거치고 나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 자신감이 붙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기분이 쭉 이어지길, 그리고 다시 만나 내가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나눌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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