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실효성 강화와 개정 방향 모색' 토론회 후기
글_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14기 자원활동가 강한성
맑고 서늘한 날씨가 이제는 가을이 왔음을 짐작케 하던 지난 7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 시행 7년차를 맞아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실효성 강화와 개정 방향 모색’ 토론회를 참관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가 좌장을, 김재왕 변호사가 발제자를 맡았고 여러 장애인 단체 활동가 및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원회 공무원이 토론자로 참석하였습니다. 토론회에서는 크게 모바일 정보접근권, 문화향유권, 권리구제에 관한 이슈들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먼저 모바일 정보접근권 보장에 대해서 김재왕 변호사를 비롯한 여러 토론자들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2007년 제정되고 이듬해 시행된 장차법은 스마트폰 시대에 현저히 뒤떨어져 있습니다. 시행령 제14조(정보통신·의사소통 등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가 정보접근권 보장 범위에 대해 여전히 웹사이트로 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완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실장은 이러한 미비점으로 인해 모바일이나 소프트웨어적 문제에 대한 진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언급하였습니다. 특히 정부 행정전산망의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아 시각장애인 공무원의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김철환 한국농아인협회 부장은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정보접근이 어려운 소수자를 위한 입법 사례로서 미국의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21st Century Communications and Video Accessibility Act)’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박김영희 대표 또한 법 제정은 최소 10년을 내다보며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 무색해진다며 장차법의 시급한 개정이 필요하다 첨언하였습니다.
한편 이석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과장은 모바일 정보접근권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는 점에 동의하였으나 다만 현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지침 2.0’이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임을 언급하였습니다. 조속한 지침의 완성을 촉구할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김웅년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사무관은 모바일 정보접근권을 개정안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모바일’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나 현재 어느 법에도 그러한 정의가 없다는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서 향후 개정안에 포함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발언했습니다.
문화향유권 역시 첨예한 이슈였습니다. 김재왕 변호사는 대표적 사례로 영화와 출판물, 그리고 관광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영화와 출판물 관련 사업에서의 장애인 대상 편의제공을 현행 임의규정에서 의무규정으로 변경할 필요성이 있으며 아직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장애인의 관광활동에 대해서도 차별금지 내용을 명확히 규정해야 할 것이라 지적하였습니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자신이 영화관에 방문한 실제 사례를 공유하며 문제제기에 현실감을 더했습니다. 관람하고자 했던 영화의 상영관이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한 층계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직원에게 업혀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양영희 회장은 장애인에게 휠체어로부터의 분리가 주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 설명하며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이 여전히 적절히 보장되고 있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박김영희 대표 또한 최근 제주도를 방문한 경험에 대해 첨언하였습니다. 휠체어를 수용할 수 있는 렌터카, 숙소가 없다시피 하며 하루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하기조차 힘든 제주도 장애인 콜택시의 현황을 언급하였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숙소 인근만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에 좌중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석준 과장은 실제 진정사건 중에도 영세 여행사의 단체관광 프로그램에서 적절한 편의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안이 있었음을 말하며 권리구제의 난감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웅년 사무관은 장애인의 여가 ․ 문화생활에 대한 편의제공이 현재 의원발의법안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보건복지부는 반대가 없으나 타 부처에서 이견이 있어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라 설명하였습니다.
권리구제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도 오갔습니다. 김재왕 변호사는 사법기관이 장애인에게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를 행정기관에서도 적용하도록 개선을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장차법 제48조(법원의 구제조치)에 대해 행정법원과 민사법원 중에 관할을 명시하는 규정 역시 필요하다 지적하였습니다.
이어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관련 차별 진정사건의 90.6%가 각하, 기각 조치되고 있어 과도하게 보수적인 잣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강완식 정책실장도 인권위 권고까지 짧아도 1년, 길게는 2년 이상이 걸리는 현재 체계는 차별행위 시정에 적절치 않음을 이야기하며 보다 강력하고 신속한 절차 도입을 촉구하였습니다.
또 이문희 사무차장은 이처럼 인권위가 장애 차별행위 진정에 효과적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법원의 구제조치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시정권고 권한만을 갖는 인권위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법원의 적절성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문희 사무차장은 이를 위한 장차법 개정, 장애인 사법지원 조직 및 절차 마련, 전담재판부 구축, 장애인 판사 및 직원 확대 등을 요청하였습니다.
한편 이석준 과장은 인권위 역시 진정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으나 피진정기관의 진술을 받는 과정,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장기간의 용역을 거쳐 회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연되는 측면이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장애 개념정의가 손상적·의료적 모델을 벗어나 인권적·사회적 모델로의 이행이 필요한 점, 평생교육이나 학원 영역의 장애인 대상 편의제공, 농문화(Deaf Culture) 등 소수문화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의 필요성 등에 대한 논의 역시 이루어졌습니다.
드라마 『미생』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한석율은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라는 대사를 입에 달고 삽니다. 소수자인권위원회 활동가로서 여러 경로를 통해 문제의식을 함양할 기회를 마주하고 있지만 현장에 계신 활동가님들의 목소리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도 드문 것 같습니다. 이번 토론회 역시 현장에서 장애 인권의 향상을 위해 활동하시는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넓은 홀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아직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큰 관심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여 못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김영희 대표의 인사말 중 “우리는 소수정예네요.”라는 부분이, 묘한 소속감과 함께 서글픈 감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한편 인사말 중 ‘우리가 법률 단어 하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던 그 이유가 토론회를 통해 조금씩 구체적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향후 장차법이 어떤 방향으로 개정되는지, 아직 미처 발견되지 못한 문제점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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