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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희망법 16년 겨울 수습을 마치고 나서

희망법 16년 겨울 수습을 마치고 나서


"공익 또는 인권을 위하는 변호사는 제게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지난 3주의 수습기간은 그런 미지의 영역을 한 번쯤 들여다 보면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이번 희망법 실무수습또는 새로운 시도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생각이 듭니다." 2016년 동계 법학전문대학원 실무수습에 참여한 전해웅 실무수습생이 실무수습 전반에 대한 후기를 전해왔습니다.

 

    1. 희망법 지원하다


공익인권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조직문화에 대한 까탈스러운 제 취향에 맞는 희망법을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해 11월에 로스쿨에서 공부만 하는 바보가 되어가는 중에 희망법 동계실무수습 지원서를 작성 제출하였고 희망법 구성원 분들의 소정의 서류심사를 거쳐 동계실무수습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희망법 실무수습지원서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저 스스로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원서 작성란에 지원자가 해왔던 공익활동을 쓰는 공란이 기본 양식에는 세 칸 정도 있었습니다. 학업을 제외하고 제가 활동했던 공간은 주로 민주노동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저는 당 활동이나 그 밖의 제가 해왔던 일이 공익에 해당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공익보다는 정파적인 활동을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영역 세 칸 중 두 칸은 지우고 한 칸은 그대로 비워둔 채로 제 삶과 희망법에 지원한 동기를 간략하게 서술한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실무수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무사히 마치고 나서 후기를 적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2. 희망법 첫 주: 희망법 둘러보기


이번 희망법 동계수습일정은 예년과 달리 1주가 줄어든 3주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512월부터 시작된 법무부와 전국 로스쿨 학생들의 사법시험존치에 대한 입장 대립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로스쿨 2학기 학사일정은 정상적으로 마무리 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충남대학교의 경우에는 실무수습 전주 금요일인 115일까지 2학기기말고사가 진행되었고 희망법 실무수습에 참여한 다른 로스쿨 재학생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정보다 1주일 늦은 118일부터 실무수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은 시험을 마치고 바로 주말에 서울로 3주동안 머물 곳에 이사짐을 풀고 118일 월요일 바로 희망법으로 출근하는 휴식 없는 벅찬 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연말에 시위와 피케팅을 하다가 연초에 기말고사 그리고 바로 실무수습에 참가하려다 보니 몸과 마음의 피로가 쌓여 실무수습 후반부에 저는 심한 감기몸살을 앓게 되었네요.

 

희망법의 첫 날은 희망법 구성원분들과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새해부터 희망법의 교육을 담당하시게 된 서선영변호사께 일정과 기본적인 실무수습 진행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각 팀별로 지도변호사와의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기업과 인권팀에 지원하여 지도변호사인 이종희변호사에게 기업과 인권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현재 진행중인 소송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실무수습기간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출근 날인 118일은 희망법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기도 하여 저녁에는 총회에 참석하여 지난 한 해 동안의 희망법 활동에 대한 설명과 올해의 계획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후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익인권변호사들의 모임인 희망법은 총회 활동보고나 홈페이지 등의 자리를 통하여 후원회원이 자신의 기여가 실제로 희망법을 통하여 어떻게 의미 있게 쓰이는 지 공개하여 후원자들에게 희망법에 후원하는 일의 보람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희망법이나 희망법구성원분들과 같은 공익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희망법이 계속 활동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저도 실무수습을 하던 중 홈페이지를 통하여 후원회원에 가입했습니다.

 

이튿날은 김재왕변호사로부터 공동과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후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6 가지 주제로 희망법 변호사분들이 돌아가며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교육은 희망법의 활동에 연관된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희망법은 일반 법무법인에서 보기 어려운 주제의 소송을 많이 다루는데 그런 신기함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내가 만약 이러한 사건을 전담하는 변호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그러한 생소함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았습니다.

수습기간 중 접한 희망법 구성원들이 작성한 소송상의 서면이나 성명서 기타 문서들은 소수자 인권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상식과 때로는 배치되는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을 담은 한 편의 인권선언문이나 인권보고서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글 하나 소송 하나에 담겨 있는 희망법 구성원 분들의 열정이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전례를 찾기 어려운 소송을 진행하면서 희망법이나 공익인권변호사들이 더욱 일을 잘할 수 있으려면 변호사 개인의 노력이나 열정뿐만 아니라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대와 노력, 협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희망법 둘째 주: 기업과 인권팀 개별 과제르노삼성 성희롱사건


희망법에서의 2주는 개별과제를 받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기업과 인권팀에 속한 세 사람은 희망법 홈페이지에도 항소심 결과가 소개가 되어 있는 르노삼성 성희롱사건에 대하여 각자 다른 법률문서를 검토, 작성해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습기간이 짧고 르노삼성 성희롱사건의 기록이 방대하여 기업과 인권팀의 개별과제는 이 하나의 사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각자가 맡은 서면을 작성해보는 것만을 하게 되였습니다.

제가 검토를 맡은 주제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 2항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였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희롱피해당사자가 아닌 피해자를 조력한 사람에 대한 불리한 조치도 제142항에서 말하는 불리한 조치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1심과 2심의 소송기록을 읽어보는 것으로 개별과제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법공부를 시작한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고 학교에서 시험에 맞춘 대비만 해온 터라 실제 소송기록은 희망법에서 처음으로 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록을 꼼꼼히 봐야 할지도 알기 어렵고 어떻게 서면을 적기 시작해야 할지도 알기 어려워 자료검토와 서면 초안 작성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점은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 피해당사자의 성희롱 문제제기 이후의 불리한 처분 등을 다룬 사례는 적었으며 제가 맡은 피해자의 조력자 등이 쟁점이 된 사안은 판례를 찾기 어려웠던 점입니다. 그리하여 쟁점의 검토나 논거는 지도변호사인 이종희변호사께서 보내주신 외국의 입법례와 판례 등을 약간 소개한 자료나 미국의 평등고용기회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EEOC)의 매뉴얼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판례의 법리가 아직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와 같은 사안에서 제가 지지하거나 주장하는 측의 논증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지금보다는 더 끈기 있게 노력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법학지식도 부족하지만 그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정이나 의지가 부족하진 않았나 계속 반성하고 반추하면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마지막 한 주 동안 이종희변호사에게 몇 가지 제안사항을 포함하여 검토를 받고 검토에서 지적된 부분을 중심으로 내용을 보충하여 수정본을 제출하고 수습 마지막 날 개별과제에 대한 최종 강평을 받고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4. 다른 활동들 주민번호관련 기자회견 진정서 제출/ 재판 방청


희망법에서 수습을 진행하던 127일 인권위원회 앞에서 주민등록번호 중 성별식별번호를 포함하는 것은 차별행위 및 인권침해이다라는 취지의 기자회견과 인권위원회 진정서 제출하는 현장에 동참하였습니다. 기존의 주민번호가 생년월일을 비롯하여 성별표시까지 너무나 많은 개인정보를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어 개인정보보호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되었습니다. 이날 제출한 진정서는 그 중에서 7번째 숫자로 남자는 1또는 3, 여자는 2 또는 4를 쓰는 성별식별번호제도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희망법의 류민희변호사가 진정서의 내용을 기초한 것을 인연 삼아 희망법 실무수습생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약간 새는 이야기를 하면 제가 희망법을 수습기관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나이와 성별을 묻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나이와 성별 외모 등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문화에서 수년 동안 지내다가 출신학부와 학부학번, 생년월일정보까지 비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지내는 로스쿨 문화에 적응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에 반해 희망법은 나이와 성별, 출신학부와 학번 그리고 사진 등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담백한 지원양식을 갖추고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 덕분에 희망법은 걱정 없이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한 번 13자리 숫자를 적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주민번호를 적으며 누군가는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정말 단지 주민번호를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조차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민번호에 대한 문제가 아직까지는 대중적으로 인식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주민번호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어서 이러한 문제제기과정에 동참한 것은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실무 수습 활동의 일환으로 2주차에 한 번 3주차에 한 번 재판방청을 했습니다. 두 번 모두 형사재판이었는데 첫 재판은 희망법의 김재왕변호사께서 담당하는 사건이었고, 두 번째 재판은 서선영변호사께서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있는 사건의 증인신문을 방청하였습니다.  

 

 

    5.  넓은 서울혁신센터와 따뜻한 희망법 사람들


희망법은 최근에 불광역 근처에 있는 서울혁신센터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동계실무수습이 서울혁신센터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실무수습인 것 같습니다. 희망법 사람들은 예전보다는 넓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넓은 공간인 반면에 건물의 난방은 문제가 있었지만 희망법 구성원 분들의 배려 덕분에 실무수습 기간 동안은 큰 문제 없이 편하게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제가 희망법에서 실시하는 수습을 함께 하여 가장 좋았던 점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희망법 특유의 평등과 세심한 배려가 있는 문화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공간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는 아직까지 로스쿨 학생으로서 어떤 법률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현실에서 활동하는 희망법 공익인권변호사분들과 함께하여 조금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희망법 수습기간을 마치면서도 지금 이 글을 마치려고 하면서도 무언가 계속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 그 때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다음은 더 잘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공익 또는 인권을 위하는 변호사는 제게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지난 3주의 수습기간은 그런 미지의 영역을 한 번쯤 들여다 보면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이번 희망법 실무수습, 또는 새로운 시도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생각이 듭니다.

 

글쓴이: 전해웅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