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법 동계 로스쿨 실무수습 공동과제 수행 후기
# 형사소송 공판 방청부터 행정소송 준비서면 작성까지
‘레알’ 실무 경험. 여기 다 있어요.
로스쿨 실무수습. 말은 그럴싸하지만 좋은 기회 얻기는 어렵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하소연입니다. 정장 빼입고 출근했는데 하루 종일 책상 먼지처럼 앉아 있었다는 괴담, 기록은 커녕 변호사 얼굴도 보기 어려웠다는 괴담, 시간만 채우면 되니 형식적 서류만 내겠다는 괴담에 저도 많이 위축되어 있었죠. 이론교육과 실무교육의 접목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로스쿨 과정은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은 수험생활이고요.
지친 학교 생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을 반복하던 제게 소중한 기회가 있었으니, 정말 빡세되 유의미하고 심지어 “내가 더 잘 했다면...”하는 아쉬움에 학습동기까지 부여하는 알찬 과정이 바로 희망법 로스쿨 실무수습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맡은 ‘공동과제 수행에 관한 후기’를 작성하려고 보니, 이번 동계실무수습의 테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 아니었나 싶을 정로로 관련 쟁점을 재차 접하면서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실무수습 초반에 이뤄진 6회차 교육 중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관한 헌법적 의의와 집시법 관련 실무상 문제점, 최근 집시법 위반 사례로 지목된 사례, 현재 진행 중인 소송들을 접하고 조문도 함께 살펴봤던 것이 1단계였다면,
2단계로 실무수습 기간 중 방청했던 형사재판 공판이 대한문 앞 쌍용차 집회 금지에 대한 항의로 기소된 권영국변호사님 사건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3923.html) 증인신문 때문에 하루 종일 진행된 공판을 지켜보면서 조문으로만 익힌 형사소송절차(증인신문절차, 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방법 등)를 볼 수 있어서 유익했지만, 검사와 변호인 피고인 간 팽팽한 긴장감을 지켜보면서 헌법 제 21조에 명시된 집회 ·결사에 대한 자유 그리고 허가 불인정 조항, 집시법 제 1조 목적 조항에 뻑뻑 줄을 그으며 괜히 신경질을 부렸던 게 기억납니다.
# 공동 작업의 묘미: 의견 대립, 역할 분담, 또 다른 성과.
그리고 3단계, 실무수습 2주차 즈음 실무수습생들에게 주어진 공동과제는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의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 6월 초 이 사건 원고를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할 목적으로 청와대 인근 총 61곳의 장소에 대하여 집회 신고를 하였는데 신고를 받은 종로경찰서는 신고 한 61곳 모두 일괄 집회금지통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 장소 포함 대부분의 장소의 집회금지통고 사유로 집회 신고 장소가 주거지역 혹은 유사 주거지역이어서 거주자들의 사생활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집시법 제 8조 제 3항 제1호 사유)을 들었습니다.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092019551&code=940100)
행정청의 합당한 판단에 의한 처분이었을 수도 있지만, 앞서 본 권영국변호사님에 대한 검찰 기소 등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다룰 집회에 대한 금지통고가 유사 사유로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헌법 상 명시된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가 특정 행정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처분으로 침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회 신고제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쟁점은 금지통고 처분의 위법성 여부였습니다.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큰 틀은 구성원과 앞선 실무수습생 분의 작업을 이어받았습니다(이런 점에서도 공동 작업!). 저희가 준비서면을 계획하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일을 진행했습니다. 이 사건 신고 장소가 금지통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 당해 장소가 주거지역 또는 유사 장소 해당 하지 않고 사생활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다른 금지통고사유의 요건을 구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다소 소음 유발 등의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공익의 우위성의 헌법적 근거 찾는 것. 이렇게 역할을 나눠 법률과 시행령 재차 검토, 판례 및 관련 문헌(평석, 논문, 기사, 통계자료 등) 조사 역할을 분배 해 맡고 매일 결과를 공유하며 준비서면을 작성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작업 초반에는 이미 작성된 답변서와 준비서면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면적 논의만 이뤄졌었는데, 각자의 역할에서 발견한 것들을 나눠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처분청의 논리와 예상되는 방어방법의 법리, 증인 선정이나 증인신문 시 유의할 점, 법원에 석명을 구할 것들, 현장 조사에서 얻은 아이디어, 증거 검토 결과 등 다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유의미한 근거 조문도 찾아낼 수 있었고, 유용한 통계자료를 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진행 중인 사건이다 보니 쓰의 유용한 실무 팁도 배울 수 있었고, 사안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이들과 공동 작업을 하니 유사 사례들을 찾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 묻고 답하고 도움 되는 정보도 찾아주면서 사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실무수습생들 각자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면서, 그만큼 사이도 돈독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시민 단체들과 하는 공동 작업으로서의 소송.
공익법 활동은 공익·인권 활동의 전부도 대표도 아닌 한 갈래.
이 사건의 경우 관련 시민 단체와 함께하는 소송이어서 소송 진행에 관하여 공유하고 논의하는 회의가 열려 이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당사자로서 사실관계를 잘 알고 있는 분들과 사안을 다시 살피니 정리되는 부분도 있었고, 소송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이런 면에서도 공동작업!). 무엇보다 집회의 자유 보장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하여 해당 사건을 법정에서 다투는 것 외의 활동들을 계획 · 구성하고 역할 분담하는 것을 보면서 공익활동 현장에 있어 법률지원이 어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활동 중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희망법 구성원들은 종종 법률 활동은 공익활동을 대표하는 것도 전부도 아닌 공익 활동의 일부일 뿐이라는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인권활동이 지나치게 사법부의 판단에만 의존하거나 입법 활동에만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는 말, 그렇지만 법률 지원의 필요성은 강조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공익인권법 활동의 중요성은 말이 필요 없다는 점, 법률가이자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갖는 다는 것은 뭘까 하던 혼자만의 고민들을 더 깊게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희망을 만드는 법”은 희망을 만드는 정말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로서의 법의 역할과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긴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준비서면이 쓰에게 전달되고 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지 한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지금도 사건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 무상급식 요구 집회 장소를 둘러싼 경찰버스 사진을 볼 수 있었어요(관련 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83110.html). 광장에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인 집회 현장. 다시 떠오르는 집회의 자유의 보장에 대해 고민한 지난 한 달을 되새겼어요. 우린 정말 집회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걸까요?
# 한 달. 짧디 짧다는 것은 다툼 없는 사실.
공동과제를 진행하면서 수회에 걸친 회의와 서면 작성, 검토 과정은 외롭고 고립된 경쟁적 수험 생활로서의 법학이 아니라 “희망을 만드는 법”의 여러 의미로서의 법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무수습이 이렇게 알차고 탄탄할 수 있는 건, 로스쿨 제도의 장단점을 안고 있는 로스쿨생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획된(로스쿨생을 위한 배려인지 확인은 못했지만,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의 실무수습도 경험한 제 사견입니다) 프로그램과, 과거 실무수습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프로그램 수정을 거듭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실무수습생들에게 희망법에서의 시간이 더 나은 기회가 되길 바라는 희망법 구성원들의 노력 덕분이겠지요. (더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다음 실무수습생 분들이 부럽다는?!)
1달이 길다고요? 짧디 짧다는 것이 다툼 없는 사실!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더 열심히 해서 다 같이 헤어질 때 나눈 인사 “곧 다시 만나서 같이 일해요”라는 말이 진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_ 전북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5기
백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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