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2014.12.15 제1040호] |
[이슈추적] 박원순 시장 “동성애 지지할 수 없다” 입장 밝히자 차별반대 지지 시민들 등 돌려… 문제는 혐오세력 아닌 그들에 휘둘리는 정치세력 |
“저는 늘 핍박받는 사람들, 늘 외로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돕고 배려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는 입장은 동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11월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성소수자 인권 지지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최근에 모 일간지에 실린 성소수자 혐오 광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그로부터 4년, 강산이 변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변했다. 2014년 12월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들 앞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과 관련해) 갈등이 야기되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기독신문>은 전했다. 이어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다”고 한다. 이날의 정확한 표현은 “시민사회단체가 역할에 따라 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서울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였다고 서울시는 <한겨레>에 확인해줬다.
‘동성애 지지 여부’ 묻는 것 아닌데도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에 대해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할 뿐이다. ‘동성애를 지지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박 시장은 스스로 ‘동성애 지지/합법화’라는 반대세력이 만든 프레임에 포획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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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공약에도 포함됐고, 서울시 조례에 의해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2007년 법무부안, 2013년 김한길 의원안 등 차별금지법은 철회되거나 유보되었다. 이렇게 민주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이 만든 무대에 성소수자는 끌려나와 하염없는 수모를 당했다. 지난 11월20일 서울시 강당에서 열린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에서 300여 명 반동성애 세력에 둘러싸여 10여 명의 성소수자들이 당한 것은 명백한 혐오폭력이었다. 몽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는 “그날만 생각하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뛴다”고 말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였지만, 서울시는 시민위원회의 경호 요청에 “경찰이 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사과도 하지 않았다.
“가장 나쁜 것은 왔다갔다 하는 것”
여론조사 전문가인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서 가장 나쁜 것은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설사 반대가 다수라 하더라도, 대중을 설득하면서 길을 만드는 것도 정치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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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장 포기하면 박 시장 찍을까?
이렇게 시민위원회의 압도적 가결로 헌장이 통과됐지만, 서울시는 ‘합의’가 아니라 헌장을 선포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인권을 공격하는 세력과 합의하라니, 일본이라면 재일한국인이 자신을 혐오하는 재특회와 합의를 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류민희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도 “세계인권선언도 48개국이 찬성하고 8개국이 기권했다”며 “만장일치로 될 일이라면 인권헌장이 왜 필요한가”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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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모두가 압력에 무조건 굴복한 것은 아니다. 성북구는 지난해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성북주민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이날 선포식이 열린 성북구청은 “구청장 끌고 나오라고 해!”라는 요구로 아수라장이 됐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한동안 선포식 입장도 하지 못했다. “성북구는 성소수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주민인권선언 14조 때문이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처럼 시민이 참여해 제정한 성북주민인권선언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 등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원안에서 빠졌지만, 선포가 무산되지는 않았다. 2011년 12월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명시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상당수 민주당 서울시 의원들이 개신교의 반발에 흔들렸다. 그러나 찬성이 ‘당론에 준하는 의견’이라는 소식이 본회의 표결 당일에 전해지면서 극적으로 학생인권조례는 통과됐다. 이처럼 정당이면 반복되는 인권 의제에 당론이 필요하다. 당론의 당위마저 없으면 개별 의원은 압력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여당과 맞선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성소수자 의제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청소년 인권이나 해고자 복직 같은 문제도 그렇다. 공현 청소년인권활동가는 “새정치연합(민주당)은 차별금지법, 학생인권 등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지만 전혀 적극적이지 않고 때론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인권 의제를 자신들이 해결할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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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혐오세력이 아니라 혐오세력에 휘둘리는 정치세력이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는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서울시의 입장과 상관없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기로 했다. 이미 제정된 헌장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인권장 50개조가 선언하는 인권의 주체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다. 지금 멈춰선 것은 보편적 인권이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왜 절실한지 역으로 증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침묵은 죽음이다. 한가람 변호사는 “지금 숨죽여 사태를 지켜볼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리에 서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85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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