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익이 아주 특별한 분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남을 위한 변호사와 나를 위한 변호사가 구분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 되어서 그로인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법에서 만난 구성원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너무 착해서 자신의 이익과 기쁨을 다 버리고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영역 안에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많이 내어주는 사람.
법학전문대학원에 오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몇 가지의 선택항이 주어진다. 첫 번째로는 판사나 검사를 하고 싶은가 아니면 변호사를 하고 싶은가를 묻고, 변호사를 하고 싶다면 법무법인에 가고 싶은지 일반회사의 사내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혹은 공공기관 등에 가고 싶은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어떤 것도 선뜻 원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꼬집어 말하기도 어려운 막막함의 가운데에서 한가람 변호사님의 강연을 들었고 희망법을 알게 되었다.
학교공부가 답답할 때 마다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희망법을 보았다. 여기저기 특강과 캠프를 통해서 희망법에서 나온 강연을 들었다. 트위터로 소식을 듣고, 간간히 언론에 나온 희망법을 만났다. 또한 내가 로스쿨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먼저 희망법을 아느냐고 물어왔다. 이렇게 밀려오는 희망법이라니, 저곳에서 실무수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희망법에서 공고가 뜨지 않을까 하며 기다린 지 일년 정도, 기말고사를 보던 마지막 날 급하게 희망법의 실무수습 공고를 보았고, 부끄러운 지원서를 낸 이틀 후 출근 이메일이 왔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두 명의 실무수습생 중 한명이 되었다.
어떤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첫 번째로 나는 이분들이 가지는 전문성과 그를 위한 노력에 가장 놀랐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까 큰 회사보다는 조금 편안하게 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올 여지도 없었다. 사건 하나하나가 주는 무게는 컸다. 지금 당장 이 사건은 당사자에게 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한 일들이었고, ‘일은 일이다’라는 말이 수습 내내 가장 나를 사로잡았다. 일은 일답게 제대로 해야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관심사를 넓히고,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것에 몇 배나 많은 부분에서 치밀하기 위해 공부하고 다듬으며 밤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런 꼼꼼함은 내 부끄러운 과제물에 빼곡이 쌓인 빨간 줄로 돌아왔다. 문장 하나하나를 입으로 곱씹으면서 바로잡고 지적해주시는 과제첨삭덕분에 지난 세학기 동안 학교공부에서 막혔던 무언가가 뚫리는 느낌이었다.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꼼꼼함, 공익변호사라고 할지라도 변호사로써의 전문성은 피해갈 수 없었다.
두 번째는 교육프로그램의 독특성이다. 기업과 인권 교육은 평범한 제목과는 달리 한국기업의 해외법인 등을 통한 인권침해사례를 법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를 다루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직접적 인권침해에 대한 일반적 교육과는 다른 새로운 분야였다. 장애와 인권 교육은 “장애인에게 어떠어떠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에서 그치지 않았다. 장차법이 다른 법과 달리 법률을 통해서도 차별을 구제받을 수 있는 점, 이러한 점을 다른 분야로도 확산시킬 수 있는 점 등을 세밀하게 다루었다. 또한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재판방청, 과제, 회의참여로 이어져 사건의 수임과 처리의 일련의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장애와 인권 분야는 교육을 통해 장차법의 기본 이해와 현재 진행 중인 저시력 학생을 위한 축소시험지 제공에 대한 교육을 받고, 서면을 검토하며, 이후 유사 재판을 방청하고, 맹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만나고 탄원서를 받고, 장애인차별철폐추진연대와의 연석회의를 통해 실제 차별문제 상담과 검토회의 참관을 통해 현장에서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는지 까지 일관성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화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처음 형사사건의 기록을 보고 의견서를 작성하는 과제에서였다. 학교에서와 같이 논점을 지적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는 문제에 대해 지적만 한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꼼꼼하게 읽어보신 지도변호사님께서는 가장 먼저 ‘어떻게 해야 판사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인용해줄까요?’라고 말씀하셨다. 모두가 문제라고 알고 있지만 현재의 법으로는 더 이상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을 때, 그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법이 촘촘하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그 빈 공간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를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그 공간을 판사에게 검사에게 전가해 버리는 것은 변호사의 자세가 아니었다. 또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사안에 대해 화내고 지적하는 것에 앞선다는 것을 배웠다. 주장하기 전에 먼저 원칙을 밝히고, 감정이 앞서기 전에 단계를 생각하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이었다.
4주의 실무수습 기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선배들의 일하시는 모습을 뒤에서 보기만 해도 좋겠다 하는 목적으로 희망법 지원서를 썼다. 뒤가 아니라, 안아서 바로 앞에서 보여주셨던 희망법의 구성원분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도해주신 부분 명심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법의 빈틈을 메꾸는 테트리스의 긴 막대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글_정진아 (2013년 희망법 여름 실무수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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