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법에서의 한 달
- 환대 속에서 공익인권법 활동 염탐하기
희망법에 문 두드리기
5월 한 달간 ‘실무수습’이라는 명목 하에 희망법을 왔다갔다 했다. 사법연수원에서 5월은 마지막 평가시험 종료 후 기관별 실무수습 전에 테마특강을 진행하며 조금 쉬어가는 기간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그 기간을 활용하여 실무수습을 할 수 있도록 ‘수료 전 인턴쉽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희망법에 문을 두드렸다.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굳이 희망법에서 수습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공익인권법활동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익인권법활동을 하는 단체로 ‘공감’도 있겠지만,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고민을 시작하여 그 결과물의 하나로서 희망법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의 경험과 지식, 시행착오를 엿볼 수 있다면 공익인권법 활동에 관한 나의 고민을 구체적 형태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처음 한 일 - 마레연 현수막 사건
처음 희망법에서 내가 한 일은,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 게시를 불허한 마포구청의 처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페이스북 등지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접하면서 분개하기도 한지라 이런 사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다.
그러나 연수원에서는 의견서 작성에 관해서는 배우지 않았었고 너무 오랜만에 시험 답안지 외의 글을 작성해 보는 지라 시간 내에 제대로 된 글로 작성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담당 변호사님께서 내가 작성한 것에 일일이 코멘트를 해 주시고, 완성된 의견서를 보내 주셔서 의견서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알 수 있게 된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의견서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 궁금해져, 민변에서 하는 의견서 작성 실무교육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 실무수습을 하는 곳에서는 형식을 갖춰서 의견서 초안을 완성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한 공익인권법 분야에서 의견서를 쓰는 것이 단순히 기존에 있는 법률을 해석하는 것이 다가 아니기에, 문제가 되는 사안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에, 그런 능력도 많이 배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과정이었다.
기업과 인권 팀에서 보고 들은 것들
희망법에 실무수습 문의를 할 때 노동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기에, 희망법의 중점영역인 ‘기업과 인권’ 관련한 활동에도 따라갈 기회를 많이 주셨다. 케이블 방송의 불공정 거래에 관해 하도급법 위반이나 특수고용관계를 검토하면서 수차례의 하청을 거쳐 열악해져만 가는 노동조건의 문제를 접할 수 있었고, 다국적기업의 인권침해 네트워크 회의에 참석하여 한국 의류업체인 세아상역의 니카라과 등지에서의 노조 파괴 문제를 알게 되었다. 사업장 CCTV 영상을 노동자 징계용으로 쓸 수 있는지 문제를 논의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청을 하면서 사업장에 만연한 노동자에 대한 감시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기업과 인권 팀 활동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업과 인권 팀 내부간담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기업과 인권 분야는 희망법에서 올해부터 중점 영역으로서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여 그 활동의 구체화를 위해 이 간담회가 기획되었다고 한다. 노동자건강권, 노동자감시의 영역에서 활동해온 활동가들과 관련 문제를 연구해 온 교수, 그리고 희망법 변호사들이 참석하여 그 영역에서 문제되는 사례, 관점, 대응 등을 광범위하게 이야기하였다. 통계에 잘 잡히지 않으며 사망을 해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현실, 사업장에서 노동자 감시시스템이 광범위하게 구축되어 노동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노사간의 협상 과정에서 교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는 현실 등등. 두 문제에 있어서 공통되었던 지점은 기존 노조 조직 체계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문제가 많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단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막연하게 노동인권 영역에 관심이 있다고만 했지, 실제 현실에서 어떤 것들이 문제가 되고, 어떤 영역에서 대응이 더 필요하지 알지 못하였는데 그런 것을 현장 활동가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사회 변화는 지속적인 실천에서부터
전반적으로 희망법 구성원 분들과 활동가들이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보면서 공익활동을 하기 위해서 사소한 일부터 책임지고 실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능력도 키워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공익인권 영역에 관심‘만’ 있었을 뿐이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책임지고 끝까지 실행하려는 자세와 그 활동을 담보할 능력을 키울 생각은 부족했다는 반성이 많이 들었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변화라는 것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뒤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천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럽지만 다시 느끼게 된 한 달이었다.
끝나며... 아쉬움과 감사함
5월 한 달 동안 희망법에서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배웠다기보다 보고 들으면서 배웠던 것 같다. 애초에 내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지는 않았고 ‘염탐’을 하려 했던 목적이 강했기에, 희망법에 끼친 민폐와는 별도로 나로서는 그 염탐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그래도 시험 끝나고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집중을 못 하다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일 좀 할 수 있겠구나 하던 차였는데 이렇게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렇게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점심만 축내는 실무수습생이었지만, 언제나 환대해주시고 고민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신 희망법 구성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5월 한 달의 가장 큰 수확은 앞으로 관련 활동을 하고자 할 때 조금은 편하게 여쭤볼 수 있는 분들이 생겼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편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그렇게 녹아들게끔 해 주셔서 감사하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나의 욕망이 실현가능한 것이라는 보여주셔서 또한 감사드린다.
또 만나요, 그럼!
글_이종희(사법연수원 43기, 희망법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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