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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희망법

[한겨례21] 열정과 무관심이 낳은 차별금지법 ‘금지’

열정과 무관심이 낳은 차별금지법 ‘금지’ [2013.05.06 제959호]

[특집2] 2007년에서 2013년까지 차별금지법 제정 실패의 역사…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된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차별금지법 제정, 기독교계와 정부의 대립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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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92조에 대한 민주당의 분열은 점입가경이다. 차별금지법 철회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군사법원장 출신 민홍철 민주당 의원은 군형법 92조 개정안을 내놓았다. 위헌성 논란이 일었던 군형법 92조의 ‘계간’ 항목을 ‘항문성교’로 바꾼 개정안이 김광진 민주당 의원의 발의로 지난 3월 통과된 뒤였다. 민 의원이 낸 ‘군형법 일부 법률개정안 공동발의 요청’을 보면 92조 6항의 명칭이 ‘추행’에서 ‘동성 간의 간음’으로 바뀐다. 내용도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이 ‘군인 또는 준군인이 동성 간에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기타 유사성행위를 한 때에는’이라는 문구로 대체된다. 이렇게 되면 동성 간 합의된 성행위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처벌 대상도 남성 동성애에서 여성 동성애로 확대된다. 이 조항을 “동성애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비판해온 성소수자단체는 4월25일 민주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의 철회를 주장했다. 한편 한 민주당 의원은 군형법 92조 폐지안을 마련 중이었다. 앞서 김광진 의원의 개정안이 나올 당시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의 합의된 성관계는 처벌하지 않는 안도 나왔다. 이렇게 하나의 조항에 대해 4개 법률안이 나온 민주당은 진정한 다양성이 보장되는 중구난방 ‘무지개 정당’이다.


개신교 뒤에서 웃는 재계와 새누리

강력한 반대자와 헤매는 정당이 있지만, 차별금지법 찬성 여론은 확산되지 못한다. 여성·장애인 등이 함께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있지만, 찬성 여론 조직의 짐은 성소수자단체가 크게 지고 있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현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원래 노동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차별로 인한 해고를 다투는 과정에서 이를 판단할 법적 근거의 필요성이 먼저 제기된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계가 50%, 여성계가 30%, 소수자들이 20%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도 버거워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개신교가 강하게 나선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한채윤 대표는 “한국에서 차별은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차별금지법 발의조차 가로막는 개신교 때문에 차별의 실체가 드러났고,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문제의 핵심은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종교적 신념이나 압력이 정책에 반영돼서는 안 된다는 공직자 윤리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차별금지법 논란의 뒤에서 웃고 있는 이들도 있다. 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2013년의 논란에서 보이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다시 주장할 필요도 없이 개신교계가 대리전을 치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개신교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즐기는 새누리당도 있다.

차별금지법 철회가 알려질 즈음인 4월23일 프랑스에서는 동성결혼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이 가결될 무렵, 반대하는 이들이 의사당에 들어와 야유를 퍼부었다. 클로드 바르톨론 프랑스 하원의장은 이들을 향해 “저 미친 사람들을 국회에서 쫓아내세요. 민주주의의 적은 국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쫓아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법안 상정 하루 전에 탄약가루가 든 협박 편지를 받았다. 어디가 정상 국가이고, 누가 유능한 정치인인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44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