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8대 대선이 5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유력한 후보 세 명의 활동이 날마다 뉴스 머리기사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후보마다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치열한 선거운동의 열기가 장애인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을까? 장애인의 선거권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나도 알고 싶다 - 선거정보 접근권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주권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법이 투표입니다. 현명하게 투표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정보 접근권 보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 시각장애인의 선거정보 접근권
1. 점자공보물의 한계
점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
공직선거법 제65조 제4항은 후보자는 시각장애 선거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점자형 선거공보는 1~4급의 등록 시각장애인에게 보내집니다(공직선거관리규칙 제30조 제5항 참조). 하지만 시각장애인 중에는 점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인데 이들은 촉각이 예민하지 못해서 점자를 익히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런 시각장애인에게 점자형 선거공보만 제공하는 것은 선거공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선거공보의 다양화 필요
시각장애인 중 잔존시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글자를 확대한 선거공보가 도움될 것입니다. 이런 선거공보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에게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선거공보의 내용을 음성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자형 선거공보에 음성 변환용 바코드를 입력한다든가 녹음테이프나 CD를 제공해야 합니다. 선거공보를 전자적 문서 형태로 발송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화면낭독프로그램이 있는 시각장애인은 그 내용을 음성으로 출력해 들을 수 있고 저시력인 시각장애인들은 화면확대프로그램으로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재외국민에게는 전자문서형 선거공보가 발송되고 있습니다(공직선거법 제218조의14 제4항 제3호 참조). 그러니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의 다양성
장애는 다양합니다. ‘시각장애인=점자’라는 등식은 시각장애인의 다양성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선관위는 이런 다양성을 고려해 선거인에게 맞는 선거공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점자형 선거공보를 무작정 발송하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습니다.
2. 점자형 선거공보의 문제
후보자들의 점자형 선거공보 미작성
공직선거법 제65조 제4항은 임의규정입니다. 그래서 매번 선거 때마다 일부 후보자들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점자형 선거공보 작성 비용은 선관위로부터 보조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를 강제규정으로 바꾸어 시각장애인이 모든 후보자의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점자형 선거공보 면수 제한
점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각각 표현합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일 때 초성, 중성, 종성을 묶어서 표현하는 글자보다 자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크기를 작게 할 수 있는 글자와 달리 점자는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양면으로 인쇄하기 위해서는 줄 간격이 넓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점자로 작성하면 글자로 작성했을 때보다 세 배 정도 분량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공직선거법 제65조 제4항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책자형 선거공보와 같은 면수로 작성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점자형 선거공보는 책자형 선거공보의 1/3의 정보만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점자형 선거공보로는 후보자에 대해 온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자 차별입니다.
점자형 선거공보 제작 방식의 문제
시각장애인들은 종이에 점자를 찍는 천공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이전 선거에서 종이에 실리콘 등 이물질을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선거공보가 작성되어 시각장애인이 손가락을 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점자형 선거공보의 제작 방식이 천공 방식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3. 웹 접근성의 문제
시간이 지날수록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활발합니다. 그런데 정당이나 후보자의 홈페이지의 웹 접근성이 떨어져서 시각장애인들이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림이나 플래시를 대체할 문자 정보가 없거나, 개체를 마우스로만 클릭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시각장애인은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선관위 홈페이지도 웹 접근성이 우수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 청각장애인의 선거정보 접근권
1. 선거방송에서의 수화 및 문자통역
수화 또는 자막을 방영 ‘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은 제82조의 2에서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대담·토론회를, 제70조에서 방송광고를, 제72조에서 후보자들의 방송연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 자막방송 또는 수화통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규정이 모두 임의규정이어서 수화 및 문자통역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거방송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거방송에서 정보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하루빨리 이런 임의규정이 강제규정으로 개정되어야 합니다.
수화 ‘또는’ 자막
청각장애인 중에는 수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앞의 규정들은 ‘수화 또는 자막’이라고 규정하여 수화나 자막 중 하나만 제공하면 되는 것처럼 읽힐 수 있습니다. 수화를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문자통역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또한, 수화는 어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문적인 용어를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화와 동시에 문자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의무화되어야 합니다.
2. 웹 접근성의 문제
요즘은 UCC나 플래시를 통한 선거운동이 활발합니다. 그런데 음성 정보를 대체할 문자정보를 같이 제공하지 않아 청각장애인이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는 일이 많습니다. 후보자나 정당에서 웹 접근성 표준 지침을 준수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선거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 발달장애인의 선거정보 접근권
쉬운 선거공보물
선거에서 쟁점이 되는 것에는 전문적인 영역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지적 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에게 더 큰 어려움이 됩니다. 이들을 위해서 선거공보가 쉽게 쓰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투표안내문도 쉽게 쓰여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림을 활용해 선거와 투표과정을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나도 투표하고 싶다 - 투표에서의 정당한 편의
* 지체장애인
1.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
공직선거법 제6조 제2항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을 위해 교통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이동지원이 된다면 중증장애인도 쉽게 투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차량지원과 인력지원이 필요합니다.
2. 계단이 있는 투표소
투표소까지의 접근권 보장
매번 선거 때마다 투표소가 2층에 설치되어서 휠체어 장애인이 투표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나마 개선되어서 1층에 투표소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그곳에도 계단이 있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차장이나 공원, 지하철역을 활용해 투표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시로 경사로를 설치하는 때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을 준수해서 경사로의 기울기를 10도 이하로 하고 높낮이 차를 2cm 이하로 줄이며 폭을 1.2m 이상으로 충분히 해야 할 것입니다.
휠체어를 들어서 옮기는 문제
그리고 사고발생 가능성과 인격권 침해 여지가 있으므로 휠체어를 들어서 투표소까지 옮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종종 휠체어를 들어서 옮기면 충분하다는 인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척수장애인은 신체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들어서 옮겨지는 과정에서 떨어져 다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휠체어는 장애인의 몸과 같은 것입니다. 낯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몸이 들리는 것 자체가 장애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3. 장애인을 위한 선거용 보조용구 개발
기표문제와 관련하여 지체 장애인들의 투표를 돕는 보조장비(기표소 내 손잡이, 고정형․이동형 의자, 한 손 장애인을 위한 투표용지 고정장치, 한 손으로 접을 수 있는 보조용구)의 설치를 의무화하여야 합니다. 혼자서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이 보조용구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는 비밀선거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또한, 투표함의 입구를 넓고 경사지게 하여 손과 팔을 섬세하게 가누지 못하는 지체장애인도 쉽게 투표함에 용지를 넣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시각장애인
선거용 보조용구의 개발
시각장애인은 자신이 기표한 것을 혼자서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기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을 부탁하는 것도 비밀선거의 원칙에 따라 쉽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표 내용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보조용구의 개발이 시급합니다. 공직선거법 제278조와 공직선거관리규칙 제16장의 2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자투표기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 발달장애인
동반 보조인의 기표 보조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은 시각 도는 신체장애로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도 시력이 낮거나, 눈과 손의 협업 능력이 떨어져 정확한 기표가 어려운 경에는 투표 보조인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이 규정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나도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싶다 - 장애인거주시설의 대리투표 문제
얼마 전 거주시설에서 대리투표가 일어난 정황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보겠습니다.
1. 부재자 투표 신청의 문제점
투표소 투표의 원칙
부재자 투표는 투표 당일 투표소에 올 수 없는 사람을 위하여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제도입니다. 그 중 거동할 수 없는 사람에 한하여 거소투표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거소투표는 투표의 공정성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거소투표신청은 쉽게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거주시설에서의 거소투표
공직선거법 제38조 제4항은 병원 또는 요양소에 장기 기거하는 자로서 거동할 수 없는 사람은 거소부재자 투표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애인이라고 해도 거동할 수 있는 사람의 거소투표신청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신청을 받은 지자체에서 별다른 심사 없이 거주시설 내 장애인의 거소투표신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발달장애인이나 휠체어 장애인이 거소투표를 하기도 합니다. 선관위에서 거소투표의 예외성을 고려해 거소투표신청을 심사하도록 지자체를 감독해야 합니다.
거주민의 진정한 의사 확인
거동이 어려워 거소투표를 신청하는 때도 그것이 장애인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소투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우므로 항상 대리투표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거소투표신청을 꼼꼼히 살펴 그 신청이 거주민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시설에서 일괄적으로 하는 것인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의 사회통합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경제·사회·문화생활을 영위해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소투표를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것으로 차별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동이 정말로 어려운지를 살펴 거소투표신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 거주시설에서의 기표소 설치 문제
기표소 설치 이후의 선관위 감독 필요
거주시설에서의 대리투표 우려 때문에 공직선거법 제149조의 2는 30명 이상이 거소투표를 신청한 거주시설에 의무적으로 기표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표소 설치만 규정되어 있을 뿐 관리감독 규정이 없어서 투표소 관리를 거주시설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주시설에서 대리투표를 하고자 맘 먹으면 실질적으로 대리투표를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관위에서 기표소 설치는 물론 투표 관리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30명 미만 거주시설의 문제
거소투표신청자가 30명 미만이면 기표소 설치가 의무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거주시설에서 대리투표가 일어나기가 더욱 쉽습니다. 더군다나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정원이 30명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장애인복지법 제59조 제3항 참조). 그리하여 거소투표신청자가 30명 미만인 경우에도 기표소 설치와 선관위의 투표관리가 의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3. 부재자신고인을 ‘수용’?
용어 개정
선거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공직선거법 제149조의 2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조항에서는 여러 차례 ‘부재자신고인을 수용하고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수용’이란 보통 범법자나 포로 등을 시설에 모아 넣는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를 장애인에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용’은 비자발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장애인이 갇혀 지내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는 만큼 이 용어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마치며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법도 장애인 선거권 보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글_김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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