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조력인?’
희망법의 월별 활동보고를 읽다보면 ‘법률조력인 활동’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발견하실 것입니다. 법률조력인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이 활동이 희망법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법률조력인 제도의 개념, 도입취지 그리고 활동방식에 대해서 시행 6개월간의 경험을 나눕니다.
반성폭력 운동과 성폭력 법제도
반성폭력 운동의 많은 성과 중에서 법제도에 큰 변화를 만들어낸 최초의 지점은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일 것입니다. 그 이후 성폭력 법제도의 재개정은, 때로는 반성폭력 운동 진영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때로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개별 사건에 대한 국회·정부 차원의 대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내용도 실체법, 절차법, 피해자의 보호,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 특례 등 형사법의 전 영역을 오갔습니다. 그 중에서 피해자 진술의 영상녹화제도, 신뢰관계자 동석 제도 등의 특례는 형사소송법에도 도입이 되었는데,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권리 보장과 피해자학에 대한 앞선 논의와 고민이 다른 범죄들과 형사법 전체에도 영향을 끼친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서, 성폭력 범죄의 수사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에 대한 사례 고발과 동시에 이에 대한 연구와 담론이 형성되었고 몇 건의 국가배상청구 소송도 제기되었습니다. 어떻게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지 법정책 차원에서의 고민의 결과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률조력인 제도가 도입이 되었습니다.
법률조력인 제도, 그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변호인 제도 도입에 대해서 2011년 (피해 아동 청소년에 대한)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안과 (피해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안이 별개로 존재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전자가 2011년 12월에 통과되었고, 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피해 아동 청소년에 한하여 제도가 시행 중이며, 장애인에 대한 법률조력인 제도는 다시 이번 회기에 입법예고되었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의6(피해아동·청소년 등에 대한 변호인선임의 특례)
①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의 피해자 및 그 법정대리인(이하 "피해아동·청소년 등"이라 한다)은 형사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변호인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해아동·청소년 등에 대하여 조사할 경우 수사기관에의 출석권을 가진다.
③ 제1항에 따른 변호인은 증거보전절차 청구권 및 참여권, 증거보전 후 증거물에 대한 열람·등사권과 공판절차 출석권을 가진다.
④ 제1항에 따른 변호인은 형사절차에서 피해아동·청소년 등의 대리가 허용될 수 있는 모든 소송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진다.
⑤ 검사는 피해아동·청소년에게 변호인이 없는 경우 국선변호인을 지정하여 형사절차에서 피해아동·청소년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
올해 3월 16일부터 시행된 위 조항에 의하면, 법률조력인은 수사기관에의 출석권, 증거보전절차 청구권 및 참여권, 증거물에 대한 열람·등사권과 공판절차 출석권을 가집니다. 피해 아동 청소년에게 변호인이 없는 경우 검사가 국선법률조력인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 지방검찰청에 등재된 법률조력인들이 사건 초기부터 지정되어 피해자를 조력해오고 있습니다.
위 조항을 살펴볼 때, 한편으로 기존 피해자의 고소대리 변호사의 권한과 큰 차이가 없다는 느낌도 듭니다. 피해자의 증인신문 시 동석이나 이의제기권이 없이 공판 과정에서 어떠한 보호를 할 수 있는지 의문도 있습니다. 분명 지금의 조항만으로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이는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의 지위와 권리 보장이 없이, 단지 그의 대리인의 권한을 피해자의 권리보다 초월하여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전문성 있는 성폭력상담소의 상담활동가가 하던 신뢰관계자 동석, 법정 동행과 모니터링 활동을 오히려 관련 사건 경험이 적은 변호사들이 대체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조력이 될지 우려를 표시하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법률조력인 교육의 심화와 상담소와의 협업의 권장을 통하여 조력의 질을 담보하여야 합니다.
몇 가지 우려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간 성폭력 피해자의 절차에서의 소외, 배제 및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출발점을 마련한 큰 의의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법률조력인 제도가 실질적인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실무담당자들의 자질 향상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희망법의 참여
그렇다면 희망법은 왜 법률조력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작년 하반기 희망법의 창립을 준비하며 가능한 활동영역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애 영역에서는 장애인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수요와 요청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법률가단체로서 이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수많은 현장 경험을 가진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http://www.wde.or.kr)와 협력하여 곧 도입될 장애인성폭력 법률조력인 제도에 대하여 준비 작업을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장애인에 대한 법률조력인 제도는 아직 입법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으나 지금 가능한 방식대로 열심히 조력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미 도입된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아동 청소년 사건을 지원하며 어떻게 제도가 이행되어야 할지 경험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사례의 힘을 믿는다
희망법은 공익인권법 운동의 실천 방식에 있어서 개별사건의 지원보다는 큰 틀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법제 개선을 위한 노력에 좀 더 중점을 둡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장과 개별적인 사례를 떠나서는 구체적인 비판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희망법의 제한적인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지는 자주 직면하는 숙제입니다. 그래도 가끔 판단의 추가 기울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파마머리가 예쁜, 20대 지적 장애 여성 J씨. J씨가 (과거의 많은 피해들과 달리) 이번에는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로 호명될 수 있을까. 6개월 전만 해도 저는 그녀의 삶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1건, 2건. 통계상으로는 사건 처리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한 사건마다 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제도와 현실, 이 사이는 너무나 멀어보이지만 희망법은 이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괴리와 간극을 좁히려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글. 류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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