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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 활동/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그 말대로 학교 안은 무사한 것일까

 


그 말대로 학교 안은 무사한 것일까 

- 집단 따돌린 자살 국가배상청구사건 방청기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 자살을 했다. 4년 가까이 지난 여름에서야, 대법원이 학교당국에 책임이 없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는 기사로 이 일을 처음 접했다. 1심과 2심은 담임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했었다. 대법원이 “정도가 심하지 않은” 집단괴롭힘에 따른 피해학생의 자살에 학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건조한 기사에, 몇 언론에서 함께 언급하던 “동성애적 성향”이란 문구가 마음을 죄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즉 조롱이나 비난, 장난에 불과할 뿐 ‘폭력적인 방법’은 아니라 판시했던 괴롭힘을 여전히 무미한 언어로 구체화하자면 이렇다. 외모 비하, 잦은 욕설, 물건 숨기기, 주먹질 폭행, 지우개가루와 감기약시럽 투척. 그 ‘이유’는 동성에게 고백했다거나, 여성 아이돌이 추는 춤을 췄다거나, 여자처럼 행동했다는 거다. 이는 학교 선생님의 피해 학생에 대한 행동 교정이나 전학 권유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상고법원이 파기 이유로 삼은 사실상·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된다. 승소 확률이 제로로 수렴하는 상황에서, 변호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파기환송심 변론에 결합한 희망법과 공감의 변호사들은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에 비추어 변론요지서를 새로이 썼고 심리적 부검을 의뢰하였으며, 전문가 증인을 세웠다. 파기환송심의 마지막 공판을 방청했다. 이날 공판은 피해 학생의 심리적 부검을 진행하신 박지영 교수의 전문가증언으로 진행되었다.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은 자살에 대해 수집된 포괄적 정보를 바탕으로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이다. 전문가는 주변인에 대한 구조화된 면접 등을 통해 모든 활용 가능한 정보를 수집한다. 증언은 따돌림과 괴롭힘 속에서도 선생님을 믿고 성적 지향을 커밍아웃하고, 동급생의 폭행에 도움을 요청하며, 반성문 요구에도 진실을 얘기했던 열여섯 고등학생의 분투를 그렸다. 끝내는 소진되었다는 결과를 알기에, 울걱 이는 속울음을 삼켰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이성애중심의 교육 현장에서 ‘비정상’인 성소수자(나 성소수자로 의심받는 이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성적 지향의 사회적 지형에 무지한 교사와 학교의 대응은 으레 그렇듯이 방관, 전학 권유로부터 아우팅, 폭언, 체벌까지 펼쳐져 있다. 반면 각국에서는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고 학교 환경을 조성할 교육당국의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는 『동성애혐오성 폭력 없는 학교』여야 가능하다고 강변한다. 그런데도 법원만은 눈감고 ‘예측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우리 학교는 ‘무사(無事)’하다고 주장할 것인가?


“내가 없다면 더 이상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채 열여섯 해도 살지 못한 아이가 남긴 말이다. 지하실에서 외롭게 죽어간 2009년의 소년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다시는 들려줄 수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성소수자에게 학교가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응답할 수 있도록, 법원이 답할 때가 아닐까.


글_박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