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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 활동/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2013년, 동성결합의 논의들

2013년, 동성결합의 논의들


글_한가람


  2013년, 동성결합의 바람이 분다


  동성결합(동성결혼, 생활동반자관계 등 동성간의 결합관계)과 관련해서 2013년은 세계적으로도, 또 국내에서도 뜨거운 해로 기록될 듯합니다. 올해에만 뉴질랜드, 프랑스, 우르과이, 브라질 등 4개국이 동성혼을 제도화하였고, 미국에서는 결혼방어법(DOMA)에 대한 위헌 판결과 동성혼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8에 대한 연방대법원에서의 변론과 판결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제도화의 바람이 직접 분 것은 아니었지만, 김조광수-김승환의 결혼식과 뒤이어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이들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충분했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의 한 장면

저 흰 옷을 입은 무리중에 저도 있었습니다. '오물투척사건' 때문에 오물을 맞기도 했었어요. ㅠㅠ

(사진: 김예현 실무수습생 제공)


  이에 따라 단체들이나 헌법재판소 등에서 동성결합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들을 몇 차례 마련했었는데요, 이 행사들에 대해서 간단히 스케치를 전하고자 합니다.


  가족관념/현실의 변화와 동성결합





  지난 7월 폭우가 쏟아지던 날,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가족구성권 연구모임)"에서는 워크숍 "가족 패러다임의 변화와 동성결합의 의미"를 개최하였습니다. 저는 이 워크숍의 사회를 맡았었는데요, 폭우 속에서도 80여 명이 참석해서 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의 김원정 선생님이 이 워크숍의 주 발제자로 참여하였고, 민변 여성위원회 조숙현 변호사님, 국회입법조사처 조주은 박사,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 동성애자인권연대 이나라 활동가, 한국여성민우회 박미숙 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워크숍에서는 동성결합에 대한 이야기가 '갑툭튀'가 아니라 혈연, 이성애, 법률혼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와 저항 속에서 이어져 온 것이었고, 가족에 대한 관념과 현실의 변화 속에서 위치지어진다는 발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동성결합 문제가 동성애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가족제도가 품고 있는 배타성과 폐쇄성, 차별적이고 특권적인 지위라는 성격에 의해 배제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이야기라는 인식, 성소수자 운동의 관점이나 법적인 관점에서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이야기, 여전히 공고한 가족제도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한 지적 등이 이어졌습니다.


  이 워크숍에서는 가족제도에 대해서 문제제기해온 흐름 속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운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관점을 강조하고, 여전히 강고하기는 하지만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가족의 양상 속에서 성소수자 가족의 모습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들으며 동성결합에 관한 내용은 결국 특정한 가족형태만을 정상화하려는 흐름들과 대척점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동성결합과 관련한 운동이 동성애자만의 운동이 아니라 특권화된 가족제도 바깥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동성결합 제도화는 어떻게 가능해질까?




(사진: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제공)


  뒤어 8월 20일에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법 연구회)에서는 "동성결합 제도화의 의미와 법적 쟁점"이라는 콜로키움을 개최하였습니다. 권선의 SOGI법 연구회 연구원이 사회를 맡고 희망법의 류민희 변호사와 부산대 로스쿨 오정진 교수가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이 콜로키움에서는 동성결합 제도화에 관한 국제적인 동향과 흐름, 배경, 입법적인 제도화와 사법을 통한 제도화의 사례 등을 살펴보고, 한국에서의 법적 쟁점과 제도화의 가능성에 대한 발제, 그리고 동성혼 제도화가 가지는 복합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평등 요구'의 관점을 넘어 보다 잘 동성결합 제도화를 이야기하기 위한 제언을 나누는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방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 류민희 변호사의 발제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오정진 교수의 발제를 통해서는 생각과 성찰을 바탕으로 한 제도화 운동을 모색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콜로키움에서는 인삿말을 한 SOGI법 연구회 회장 장서연 변호사와 더불어 발제자들의 입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요, 류민희 변호사 발제의 마지막은 큰 웃음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한 코미디언의 말이라고 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나는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그들도 우리들만큼 불행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I support gay marriage. I believe they have a right to be as miserable as the rest of us)" 우스갯소리일 수도 있지만, '왜 결혼, 특히 법률혼인가'라고 질문하자는 오정진 교수의 말과 동성결합이 기존 가족제도에 대한 문제제기의 흐름 속에 있다는 위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의 워크숍의 내용과 함께 곱씹게 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제2회 SOGI콜로키움 동성결합 제도화의 의미와 법적 쟁점" 자료집

제2회 SOGI콜로키움 - 동성 결합 제도화의 의미와 법적 쟁점 - 배포본.pdf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장 주변에 걸려 있었던 한 플래카드

(원본사진: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제공)



헌법재판소, 동성결합에 대해서 논의하다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직전, 헌법재판소 헌법실무연구회 정기발표회에서는 동성혼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동성혼과 평등권 심사기준: 미국 연방대법원 '결혼보호법(DOMA)' 위헌 판결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발표회였습니다. 


  저는 이 발표회가 있던 날,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의 또 다른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어 참석하지는 못했었습니다. 다만 헌법실무연구회 홈페이지에서 발표문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발제문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성적지향에 관한 미국 판례들을 소개하고 올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혼방어법 위헌 판결의 논리를 설명하면서, 평등원칙의 심사기준에 대해서까지 많은 공부를 하게 해 준 발제문이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논의한 것이었지만,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헌법재판소 내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전에 헌법재판소에서 성적지향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좀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구 군형법 제92조에 관한 결정문을 보면서, 헌재가 오히려 성적지향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동성애와 성폭력을 혼동하는 것 같은 부분처럼요.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 발표회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자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 헌법실무연구회 홈페이지

  http://law.ccourt.go.kr/


동성결합의 서사들, 그리고 다양한 생애를 구성할 권리



(사진: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꾼님 제공)


  위 발표회가 열렸던 9월 4일,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은 7월의 워크숍에 이어 두 번째 워크숍 "동성결합의 실천과 <당연한 결혼식>의 의미"를 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주 발제를 맡고, 그루터기 크리스님과 동성애자인권연대 여기동님, 여성학자 김순남 박사가 토론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 변호사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도 워크숍에 참석해서 인삿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워크숍에서 김조광수-김승환의 서사와 결혼식이 많은 동성결합의 서사들 속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를 상대화하면서, 보다 많은 이야기들, 삶의 모습들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가족구성권이란 다양한 생애를 구성할 권리이기도 하다는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의 문제의식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당연하다고 주어지는 이성혼을 통한 생애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하였습니다. 발제문을 쓰면서 이성결합과 동성결합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힘들었지만 많이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제 글보다 더 재미있고 많은 생각을 던져준 것이 김순남 박사의 토론이었는데요, 특히 '중산층-게이'가 결혼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는데 실제로 연구를 통해 만난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예전에 저도 동성애자로서 구성된 가족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자원이 많으면 결혼제도가 필요가 없고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도 떠오르더라고요. 이러한 토론들과 더불어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전에 이 결혼식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였으면 했습니다.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2013 연속기획 워크숍 자료집 (1차, 2차 워크숍 합본) 

워크샵자료집편집본(합본_최종).pdf



동성결합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이 혼인신고를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데요, 막상 이에 대해서 법률가들이나 성소수자 운동이 많은 논의를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김조광수-김승환의 결혼식 직후 당연한 결혼식 기획단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그리고 SOGI법 연구회가 공동으로 "'동성결합'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 변호사가 동성결합 소송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서 발제를, 이에 대해서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가 토론을, 그리고 법무법인 원에서 동성결합 소송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 발제를, 이에 대해서 법무법인 지향 이은우 변호사가 토론을, 성소수자 운동과 동성결합 소송에 대해서 동성애자인권연대 곽이경 활동가가 발제를, 이에 대해서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가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이 토론회의 기획과 사회를 맡았었고요.


  동성결합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면 법적인 공방이나 절차뿐만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기획 역시도 중요할 텐데요, 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했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고, 이 토론회를 통해서 이제야 좀 더 구체적으로 법적 절차 등을 준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식 이후에도 또 다른 과제와 활동들이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동성결합'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자료집  

동성결합 토론회 자료집(최종본).pdf


가족구성권의 보장, 중요할까?


  올해 이루어진 이러한 논의들은 아직 충분하진 않겠지만, 새로운 경험과 과제 역시 던져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다양한 가족들, 커플들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논의들이 훨씬 풍부해지고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부터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공부도 하고, 다양한 제도 밖 가족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은, 다양한 가족구성권의 보장이 다양한 생애,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사회와 그 구성원이 인식하고 보다 자신에게 잘 맞고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특정한 가족제도나 삶의 방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그 바깥에 놓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배제되고 차별받고 억압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것은 우리의 삶의 가능성을 한참 가로막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부양의무제와 같이 가족이 발목 잡는 경우도 볼 수 있었고, 반대로 나의 진짜 가족이 아파서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면서 면회도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떴는데도 상주가 되지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객식구처럼 조용히 구석에 있게 되거나, 같이 재산을 모으며 오래 살았는데 서로 관계를 해소하면서 재산분할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제도 바깥으로 밀려나 있어 가족으로 엮이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가슴 아픈 사연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든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적을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사실 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이것이 가족'제도'와 만날 때, 그리고 이것의 법적인 논리들을 만들어 나갈 때, 많은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제도나 논리 이전에, 사연과 이야기가 먼저 눈에 밟히고 궁금하고 그런데 그것들이 어느 순간 스르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런 고민을 안으면서, 저는 또 제 할 일이 있겠지요? 앞으로 벌어질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활동들, 계속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