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을 고민하다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Child under Siege), 조엘바칸 지음, 이창신 옮김, 2013
얼마 전 일이다. ‘작업장 내 괴롭힘(Harassment at workplace)’에 대한 대안을 검토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실태조사를 해본 결과, 아직 대중적으로 문제제기 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감시나 노동조합탈퇴권유, 파업 후 반성문제출의 강요 등 작업장 내에서의 조직적 괴롭힘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외국의 사례들을 검토하여 법제도적 대안의 초안을 마련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감이 있지만 ‘작업장 내 괴롭힘’은 외국에서는 비교적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이슈이다.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법률을 제정하여 이를 규제하고 형벌을 부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사 당사자 간에 해결하도록 하는 방안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법으로 금지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를 형벌로 규정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인권위원회같은 비사법적 구제수단을 통할 것인지에 따라 이 방법도 나뉜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도록 할지, 국가가 개입하되 “그런 행위 하지 마세요.”라고 권고만 할지, 아니면 “하지마!”라고 국가가 직접 명령을 할지, 국가의 개입정도에 따라 문제의 해결방법도, 그 효과도 달라진다.
그럼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희망법 기업과 인권팀을 하면서 항상 하는 고민이다. 사적 영역의 두 주체인 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에서 국가는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할까. 비단 국가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문제를 떠나더라도 ‘영리추구’라는 목적으로 사회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국가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로부터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는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일까. 규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규제가 효율적일까. 규제로 인해 사적영역이 위축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Childhood under Siege)」를 읽게 되었다.
번역된 제목만 보면 이 책은 보호주의적 혹은 동정적 시각으로 아동인권에 접근한 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책은 기업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글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저자는 폭력적이고 중독적인 게임, 소아정신과에서의 과도한 의약품처방과 제약회사의 로비, 기업의 이윤추구를 뒷받침하는 비양심적인 과학자들, 개발도상국의 아동노동은 비판하면서 정작 자국 내 아동노동은 묵인하는 정부, 그리고 민영화로 인하여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교육 등 기업 활동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가고 있는 아이들의 상황을 분석한다.
이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독성화학물질의 규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사실 아동인권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특히, 부모의 선택을 통하여 아동인권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규제는 부모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그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한다.
부모들도 아이들을 보호할 능력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형편이 된다면) 유기농 식품을 사고, 해로운 화학물질이 들어 있을법한 생활용품은 되도록 피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 정도로는 산업용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부작용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 소비자로서 우리의 힘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관련과학이 미완성인 채 논란이 되고 있고 이해충돌이 만연한 상태에서, 어떻게 우리가 위험한 화학물질을 가려낼 수 있는가? 화학물질이 도처에 널렸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얼마 없는데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깡통에 BPA가 있는) 유기농 토마토 통조림을 사야하나, 유리병에 담긴 (농약이 들어간) 비유기농 토마토소스를 사야하나? 전자제품과 매트리스에서 PBDEs가 나올 수도 있으니 내다 버려야 하나? 방수재킷에는 PFCs가 들어 입지 말아야 하나?(187면)
그리고 저자는 법학자답게 글 전반에서 자율규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밝힌 후 글 말미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아이들을 보호받아야 할 개체로 보던(과잉보호), 독립된 개체로 보던(과소보호)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잉보호든 과소보호든 기업과 업계가 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략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잉보호는 부모의 두려움에서 촉발하는데, 이를테면 아이에게 정신장애가 있다거나(따라서 정신치료제 처방을 정당화 하고), 아이가 세균에 오염되었다거나(따라서 살충제, 방부제, 항균제 사용을 정당화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무능하고 책임감이 없다거나(따라서 교육제도의 시장친화적 개혁을 정당화하고) 하는 경우다. 과소보호는 부모의 두려움이 지나치게 ‘줄어든’ 경우인데 이를테면 정신치료제의 부작용, (살충제, 방부제, 항균제를 비롯한) 화학물질의 독성, 표준화에 따른 편협한 교육을 간과하는 경우다. 간단히 말해 기업과 업계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부풀리거나 기존 위험을 손쓸 수 없을 때까지 오랫동안 축소할 수 있는 교활한 지도자이자 패거리이며 압력집단”이라고 에릭 에릭슨은 말한다. 그렇다 보니 불가피하게 “의식이 깨어 있다는 민주주의[시민]조차도 두려움을 조절하는 능력이 무디다.”(246면)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른바 “자율규제”의 효율성주장을 논박하면서 기업에 의한 아동인권침해를 제어하기 위한 국가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조직이 이익 추구를 위해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대상을 (이 경우에는 아이들을) 걱정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똑같이, 어쩌면 더 심각한 잘못이다. 그들은 부정적 여론을 달랠 목적으로, 또는 (대단히 드문) 규제를 피해갈 목적으로 아이들을 걱정하는 ‘척’ 행동할 수도 있지만, 타인의 이익을 ‘순수하게’ 걱정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건 오늘날의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규제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자기규제가 “낡은 규제모델”을 대체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시티그룹 수석 경제학자 웰렘 뷰이터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자기규제와 규제의 관계는 자화자찬과 찬사, 자칭 의인과 의인의 관계와 같다.”
정부를 두고 다양한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더나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위협에 맞서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보호할 규칙과 기준을 정하고 시행할 권위와 적법성과 권한을 가진 조직은 정부뿐이다. 정부만이 법과 규제를 마련해, 부모가 자녀를 위해 마음껏 선택을 하도록 여건을 개선해줄 수 있다.(248-249면)
사실 저자가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동과 관련한 국가규제의 당위성을 모든 대상에 확대하는 것은 위험하다(또한 저자는 아이들과 관련한 문제에도 항상 규제가 답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국가의 아동에 대한 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의 아동인권 규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다른 영역(일반 소비자, 노동자 등)에 대한 것보다 보다 수월하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동인권의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기업의 인권침해문제를 고발하였다는 점 외에도 존 러기의 이행지침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강력한 방식의 규제가 효과적임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국가에게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시 사법적 구제수단을 마련할 의무만을 부여하는 존 러기의 입장에 비해 저자의 주장은 국가가 더욱 강력하고 직접적인 규제수단으로 기업활동을 규율하고 제어할 것을 요구하고, 특히 이러한 규제가 실제로도 효율적이라는 점을 주장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자율규제를 통해 기업의 인권옹호책임을 실현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의 경우 이러한 실증적인 비판을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_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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