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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 활동/미분류

스트라스부르 국제인권법연수




저는 지난 7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3주 동안 국제인권법 연수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세션이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비/경력 법률가, 활동가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행사라고 생각되어 소식지에 소개합니다.


제가 이 여름 스터디 세션을 알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연수원에서 1년차 시절, 선택 과목으로 '국제인권법' 수강 중 APIL 김종철 변호사님께서 특강을 하시면서 이 세션을 소개하는 유인물을 나누어 주셨었습니다. 실무에 나가기 전에 가볼만한 코스라고 생각 되어 여름법률봉사기간 동안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희망법 창립에 참여하는 데에 이 경험이 최소한 '약간'은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국제인권법연구소(Institut International des Droits de l'Homme à Strasbourg, 영문명 International Institute of Human Rights)는 세계인권선언의 성안자로도 유명한 프랑스 법철학자 르네 까생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받게 된 기금을 토대로 만든 곳입니다. 이 연구소가 하는 여러 행사 중 올해로 44회를 맞는 여름 스터디 세션이 있습니다. 수강자들은 약 3주간 국제인권법 개관과 그 해의 주제를 중심으로 강의를 듣게 됩니다.


국제인권법연구소의 홈페이지

http://www.iidh.org/


연구소는 매년 2월말쯤, 그 해 여름 세션의 주제를 선정하여 강의와 강사진을 담은 브로셔를 온라인에 게재합니다. 그리고 4월 중에 신청을 받아서 심사를 하여 어드미션을 줍니다.



올해의 주제는 종교의 자유였습니다. 최근 차별금지법과 관련하여 종교적 권리에 대하여 좀 더 차분히 공부를 할 필요를 느낀 것이 올 여름에 다시 한번 참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3주간 연수의 비용은 적지는 않습니다. 등록금 700유로(약 100만원), (개인 화장실이 포함된) 기숙사 1인실 비용 360유로(약 51만원) 그외 자전거 대여비, 식비(한끼당 약 3유로)와 항공료를 고려하면 약 300여만원은 소비하게 됩니다. 3년 동안 등록금도 꽤 올랐습니다.


저는 올해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하여 자비로 다녀오는 무리를 하였으나, 다른 분들은 상황을 소명하여 장학금을 신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비용 외에도 몇 가지 개괄적인 정보를 알려드리면,


- 지원한 사람 모두를 뽑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지역 별로 안배를 하는 것도 같습니다. 경력도 일부 보는 것 같습니다.


- 국제인권법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있으시면 좋지만, 거기 가셔서 배워도 괜찮습니다. ^^


- 수업은 영어반, 불어반으로 나뉘고 일부 강의는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으로도 진행됩니다. 저는 불어를 하지는 못하는데 현지 일상에서 큰 장애는 없었습니다.


- 주로 로스쿨 학생, 변호사, 활동가, 인권위원회/의회 직원, 검사 등이 수강자입니다. 특히 중남미, 인도, 아프리카, 동유럽 지역에서 많이 옵니다. 아시아 학생은 서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적습니다. ^^


- 주말 동안 인근 먼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은 포기하셔야 합니다. 일주일 5일을 오전/오후로 듣고나면, 주말 이틀을 다 여행하기는 힘듭니다. 스트라스부르 자체가 워낙 예뻐서 조용히 3주 지내시기에 좋습니다.


- 출석체크는 하지 않지만, 객관식 수료 시험이 있습니다.



개괄적인 정보에 이어 생활 환경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세션 자체 말고도 유럽인권재판소가 있는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생활환경도 흥미요소입니다. '여름방학 중 스트라스부르에서 다른 유럽 학생들과 파티' 이것을 위해서 오는 유럽 학생들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최근 한국에는 '꽃보다 할배'에 나온 예쁜 도시로도 더 잘 알려져 있지요.



가까운 공항(파리 혹은 프랑크푸르트, 물론 스트라스부르 공항도 있습니다)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하게 되면 스트라스부르역에 도착합니다. 역사는 구 역사를 그대로 두고 그 바깥에 보호하는 유리를 덧씌운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역




스트라스부르는 알사스 로렌 지방의 주도로, 독일과 접경 지대에 있습니다. 실제로 강 하나만 건너면 인근 독일 도시 켈(Kehl)에 도착합니다. 스트라스부르는 지명 자체도 독일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독일어와 흡사한 고어를 여전히 쓰시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상 스트라스부르는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유럽인권재판소와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 더 유명합니다. 스트라스부르 트램은 'Euro-Optimism'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달립니다. 이제 스트라스부르는 관광 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과 '인권'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EU의 2012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홍보하는 스트라스부르 유럽 의회 건물



스트라스부르의 구 시가지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몇십년 전까지 시내는 매연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도시 설계를 다시 하여 구 시가지 내에는 넓은 자동차 순환 도로가 없고 주요 교통수단으로는 트램(tram)을 이용합니다.


homme de fer 역의 트램



단기 체류자들이나 여행자들은 velhop이라는 시 대여 자전거를 많이 이용합니다. 한국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한 자전거홍보 비영리단체의 도움으로 아래 사진 맨 앞의 오래된 Fischer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하였습니다. 


velhop 자전거



식사는 약 3 유로 정도 하는 학생식당의 학생 정식(?)을 드실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전형적인 한국 입맛도 크게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먹을 만 합니다.


학생 정식(?)



기숙사는 스트라스부르 대학 기숙사를 사용하게 됩니다. 냉방이 되지 않아서 해가 뜨면(여름 동안 정말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열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것을 빼면 참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usb 선풍기라도 꼭 챙기세요~


스트라스부르 대학 Paul Appell 기숙사



올해의 개막식은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유럽평의회 바깥과 회의장



놀랍게도 유럽평의회 사무총장 야글란드씨가 축사를 하였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의 자유의 중요성,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절대적 권리가 될 수 없음을 최근의 혐오표현과 그에 대한 대응을 통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야글란드 유럽평의회 사무총장



강의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법대 건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법과대학 건물



강의실 전경입니다. 국제인권법 기본서(?) International Human Rights in Context, Law, Politics, Morals로 유명한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씨가 앞에 있군요. UN특별보고관 시절, 방문 국가로부터 문전 박대를 당하던 이야기 등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강의실 전경



강의 시간표는 아래 같은 형태입니다. 영어 수업과 강의실을 따로 표시해두었습니다. 


강의 시간표



빈 강의 시간에는 기숙사 근처 앙드레 말로 미디어텍에 있는 도서관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프랑스스럽게' 일찍 닫았기 때문에 긴 낮 시간 동안 어디서 태양을 피해야 하나 항상 고민이 되었습니다.


앙드레 말로 미디어텍 (Médiathèque André-Malraux de Strasbourg)


무엇보다 이제는 유럽에서 '스트라스부르 법원 Strasbourg court'라는 대명사로도 불리우는 유럽인권재판소를 수강생들과 단체로 견학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날짜를 잘 맞추면 공개심리도 방청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연수원 2년차 때 기관방문시 무국적자의 권리에 대한 Kurić and Others v. Slovenia 사건을 방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외국변호사라고 다 구술변론을 꼭 잘하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감상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올해의 폐막식은 알사스-로렌 도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기본 세션 말고도 인권강사교육 과정인 Ciehdu, (석사 학위자 이상만 참가가능한) 학위 Diploma 과정도 있는데 올해는 단 1명 만이 최종 Diploma 과정에 통과하여 폐막식 때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세션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매해 하는 주제에 대해서 그렇게 심화적인 강의는 아니라는 점, 국제인권법 개관은 국제인권법을 아는 사람에게는 무난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강의일 수 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아마 강의 내용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계를 압도하는 장점은, 다른 종류의 단기 국제인권법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생생한 현장 경험을 전해주는 인권법전문가 강사진, 무엇보다도 질문 시간에 자신 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열정적인 수강생들의 에너지에 있습니다. 수업시간에서 옆자리에서, 주말마다 있는 관광시간에, 기숙사 복도를 오가다가, 기숙사 공동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짧게짧게 이어지는 대화는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이번에 만난 아시아 수강자들은 더욱 반가웠습니다. 다른 지역 수강자들과는 다른 '조금 더' 가까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폐회식에서 수료증을 들고 있는 (왼쪽부터) 중국의 LGBT단체 Common Language의 Bin Xu 활동가, 희망법 류민희 변호사, The Charhar Institute의 Fang Kun 연구자, 여성단체 AVDN의 Feng Yuan 활동가.



사진으로만 깊이 없는 감상을 전하게 되었네요. 낯선 곳과 새로운 감흥이 필요하시다면, 이 연수를 추천드립니다. 제게는 강의 그 이상의 것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가실 때는 작은 usb 선풍기 챙겨가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글_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