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법 활동/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성전환자 성별정정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이젠 그만!

희망을만드는법 2012. 11. 27. 12:32




법원, "전신 탈의 사진을 제출하라"


지난 9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을 신청한 성전환자가 상담을 요청했는데, 법원이 전신 탈의 사진을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보정명령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 분께 연락을 해서 보정명령서를 받아보니 몇 가지 보정명령 내용 중에 ‘탈의한 상태의 전신사진’을 제출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사자 분은 예상치 못한 요구를 받고는 심한 모욕감을 호소하였습니다.


법원의 전신 탈의 사진 요구는 성별정정에 관한 판단을 위한 것일지라도 은밀한 신체부위를 노출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성전환자의 특수한 신체를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요구는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큰 것은 물론입니다. 이 사건 당사자 분 역시 자신의 신체를 사진으로 찍어 법원에 제출하여 법원의 기록으로 보관되고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된다는 것 자체가 큰 고통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망법은 바로 사건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후,해당 법원에 이러한 보정명령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고 이러한 사진 없이도 성별 정정 허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정명령 기한에 맞춰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현재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은 성전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2006년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 의해 본격적으로 가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판례와 이후에 나온 판례, 그리고 그 판례들을 바탕으로 한 대법원 예규에 따라서 성별 변경(법적으로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란을 '정정'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은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 관하여 특별법 등을 마련해 놓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법원의 결정에 의해 성별 변경이 이루어지는 유형의 국가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성별 변경의 요건이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그에 따르기보다는, 판례 등에 의한 판단기준에 의해 법원의 판단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기준은 국제적으로 가장 엄격한 수준입니다. 성년자에게도 부모의 동의를 요구한다거나, 외부성기를 포함한 가장 높은 수준의 성전환과 관련한 수술을 요구하는 등은 해외에서 찾기 힘든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 이에 따라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많은 성전환자들이 주민등록상 성별과 실제 사회생활상 성별이 달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과도하거나 인권침해적인 보정 요구


이러한 성별 정정의 요건을 어렵게 갖추더라도, 성전환자가 성별 정정 신청 과정에서 법원의 요구 때문에 또 한 번의 장벽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이 마흔이 넘어 성별 정정을 신청했는데도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부모 모두의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일반 병원보다 훨신 비용이 많이 들어 백만 원 가까이 들여야 하는 대학병원 진단서를 발급받아 올 것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신 탈의 사진 요구와 같이 인권침해적인 보정명령을 받기도 합니다. 


성별 변경과 관련한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과 인권 보장을 위한 사법부의 노력은 사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성별 정정을 위한 장벽은 높고, 대법원 예규에서 여러 가지 요구하는 서류들을 준비하는 과정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비용 역시도 큰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법원이 이에 더해서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은 성전환자 당사자들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되거나 상처가 되곤 합니다.


법원의 입장에서는 신중한 판단을 위해 엄격한 판단기준과 엄격한 서류기준을 적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신빙성에 의심이 갈 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이미 제출된 서류들을 지나치게 보완하도록 하여, 법적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당사자들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법원이 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없도록 대법원 예규 등을 통해 인권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역시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성별 정정 허가, 그리고 희망법이 만들어나갈 희망


앞에서 이야기했던 전신 탈의 사진 사건은 다행히 사진 제출 없이도 법원의 성별 정정 허가가 결정되었습니다. 당사자 분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씀 들을 수 있어서, 또 특히 성별 정정 신청을 준비하면서 희망법이 제작에 참여한 트랜스로드맵 http://transroadmap.net 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희망법은 이러한 보정명령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성별 정정 요건의 완화를 위한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수자들의 존엄성을,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누군가에게 우리 사회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희망법이 꿈꾸는 희망입니다. 아직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희망법이 만들어나갈 희망을 향해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글_한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