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법 활동/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실무수습] 혐오표현 토론회 후기

희망을만드는법 2016. 2. 18. 14:06

지난 1월 28일 서울대학교 법대 백주년기념관에서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혐오표현연구모임이 공동주최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에서 희망법 류민희 변호사는 "혐오표현에 대항하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요, 이 토론회를 함께 방청한 김예슬 실무수습생이 토론회에 참여한 후기를 보내왔습니다.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 후기


 

<사진제공: 서울대 인권센터>


토론회는 성공적이었다. 1월 28일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하기로 했던 토론회였지만 1시 40분이 되어서야 겨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좌중이 정리되었다. 청중이 많이 몰린 탓에 의자 몇 줄을 더 놓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토론회장은 서 있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결국 발제자와 청중이 거의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만큼 혐오표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Ⅰ. 토론회를 열게 된 배경


서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학술적 토론회가 이토록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울시민인권헌장에 가해졌던 수많은 혐오발언과 폭력이 있었다. 문경란 위원장은 개인의 정체성을 너무나도 쉽게 부인하는 상황을 목도하고, 이를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운을 뗐다. 실로 혐오표현은 도처에 있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Ⅱ. 혐오표현의 문제와 실태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이 총론적인 발제를 맡았다. 인권은 근대의 기획이라는 점을 전제로 시민권이 사회로부터 이탈된 ‘개인의 권리’로 전락하였음을 지적했다. 결국, 혐오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관계이고, 물질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차별의 권력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며, 따라서 혐오에 대한 정의론적 접근방법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인권적 대응을 통해 혐오주체의 결핍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은 우리 사회의 구체적 문제를 짚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혐오를 선동하고 합리화해 온 혐오주체들을 지적했다. 보수 우파 세력은 사회 안팎으로 전략적 행동을 했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의 소외된 개인이 갖고 있는 일상의 불안을 파고들었다. 한국의 혐오표현 논리는 모두 종북으로 귀결된다. 이는 무시할만한 대상이 부당한 특혜를 받아간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후, 4명의 발제자가 혐오표현의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발제했다. 


정혜실 다문화마을의 꿈꾸는 나무 공동대표는 우리나라의 인종주의가 역사적으로도 뿌리 깊음을 언급했다. 특히 이슬람에 대한 문화적 혐오가 강하며, 이러한 혐오는 국가에 의해 조장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편, 인종주의적 혐오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오원춘 사건을 들었다. 정혜실 대표는 확대 재생산된 혐오표현이 애니콜 시스템처럼 제도화 되면서 혐오표현에 대항하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발언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현행 모자보건법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의식을 담고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장애인 혐오에 대한 배경에는 종교적, 역사적 요소는 물론 미디어에 의한 혐오의 강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월호 같이 공적 시스템에 대한 비신뢰를 낳는 사회현상이 발생하면서 장애인 혐오의 양상이 ‘위험한 대상’으로 강화되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의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부족한 면이 있으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성소수자 인권에서 가시성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소수자 인권이 가시성을 획득함에 따라 혐오 양상이 점차 구체화 되는 현상을 분석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합리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고, 혐오주체는 자신의 혐오를 당당히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법을 제정하지 않는 국회 또한 책임을 방기한 것이며, 혐오표현을 합리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정부와 언론 또한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김호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생은 인터넷에 등장한 기형적 혐오표현을 분석했다. ‘엽기’ 코드와 ‘루저’ 정서가 갖고 있는 유희적 특성 때문에, 이에 대한 윤리적 접근은 몰이해나 위선적인 것으로 치부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터넷 혐오표현은 유희에 그치지 않고 점차 정치적 행위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의 정당화 전략이 사용되는데, 혐오주체는 혐오표현의 중의성에 기대 이중잣대를 구사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3명의 토론자가 토론을 진행했다. 


김영옥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는, 문화의 관점에서 혐오가 용인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혐오주체는 통합의 명분하에 동원된 시민이며, 상품 소비를 누릴 뿐인 주체로 하락한 시민임을 강조했다. 주체성을 상실한 이들은 허위의식에 빠져 기득권을 선망하고 소수자를 적대한다. 혐오주체는 자기가 가진 수치심을 남에게 전가한다. ‘역겨운’ 특성을 가지고 있는 소수자로부터 분리되면 나는 수치심이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원한의 정치학이 나타나는 것이다.


손희정 토론자는 토론회의 취지와 발표 내용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토론자는 혐오표현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8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베가 어디에도 있는 것은,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토록 어디에서나 혐오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각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절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퀴어활동가는 당사자, 소수자가 가지고 있는 발언의 자격을 언급하며, 대항언어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다. 혐오에 대한 접근 방식 중, 일상적·감정적 차원에서는 관계맺음과 접촉이 자주 다뤄진다고 언급했지만, 그것의 실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나영정 활동가는 구체적인 모델에 주목하기 보다는 대항의 한계성에 더 주목했다. 따라서 권력이 엉켜있는 혐오의 구조를 해체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플로어에서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자는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면 혐오가 해소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김형완 교수는 혐오는 계속되어 왔고, 사회적 양극화 차별구조가 없어질수록 반드시 혐오가 없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근래의 혐오표현은 IMF이후에 대두되었으며, 개인의 감정 문제인 것과 사회·권력의 개입으로 조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언급했다. 또한 사회가 좋아지면 혐오는 사회적 의제로서 힘을 잃어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영 팀장은 지금까지의 논의는 무엇이 혐오를 강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으며, 혐오에 있어서 감정적 정동은 분명 존재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혐오의 지점이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복지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미혼모와 아닌 미혼모로 나뉘는 등, 혐오세력이 점차 인권을 세련되게 이용하고 있으며, 역차별이나 자격부여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두 번째 질문자는 기독교에 대한 혐오가 강하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기독교인이 그렇지 않은데 보수 개독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김형완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개독의 문제는 신앙이 아니라 교회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한국 교회가 상당부분 정치에 동원되면서 소수자에 대한 공격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며, 기독교인도 동원된 피해자라고 여겼다. 차별금지법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자본가인데 기독교인이 대신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는 현실이 그러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혐오는. 감정적 호오가 아니라 물리적 폭력을 생산하는 문제 상황임을 꼬집었다. 개독이라는 표현이 기독교인에게 어떤 실존적인 차별과 폭력을 생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를 촉구하며, 개독이라는 표현은 비아냥이긴 해도 아직까지 차별과 폭력을 생산하지는 않는다고 첨언했다.





Ⅲ. 혐오표현 규제와 사회적 대안


이주영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혐오표현이 규제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국제인권규범적 측면에서 증오선동을 고찰했다. 또한 자유권규약과 유엔의 여러 인권규약에 의할 때, 표현의 자유는 혐오표현일 경우 제한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혐오표현의 범주로 괴롭힘(harassment)과 증오선동(incitement to hatred) 개념을 들어 논의의 대상을 명확히 했다. 이주영 위원은 증오선동이 갖는 개인적·사회적 해악을 강조하며 법적 규제의 주요 원칙들을 검토했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각 규제방법의 특징을 비교하면서, 이 규제가 꼭 형법적 규제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시정기구에 의한 규제를 제시하며, 시정기구가 가진 비권력적 방식 및 당사자 설득에 적합한 특성을 강조했다. 즉, 차별시정기구가 컨트롤 타워로써 기능하면서 차례로 강제적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한편, 교육이나 사회활동에 기반한 형성적 규제방법을 소개하면서, 소수자가 혐오표현을 되받아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류민희 변호사는 혐오표현에 대항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확인과 제한을 언급했다. 이는 혐오표현의 범위와 대상을 국가의 눈앞에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선동에 대한 대처가 형벌적일 필요는 없지만 아예 그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제한하기를 포함한 ‘대항하기’라는 맥락에서 ‘Counter-speech’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대항의 방법으로는 크게 국가에 의한 보호, 적극적 조치, 그리고 시민사회에 의한 대항을 꼽았으며, 시민사회를 비롯한 이해당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국가가 소수자들에 대한 피해 구제를 회피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주체임을 지적하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 받는 성적소수자들의 예를 들었다. 


이후로 2부 토론이 이뤄졌다.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혐오표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민사상 접근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주장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는 평등이라는 중요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가치는 기존의 범죄 체계가 포섭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평등은 헌법의 중요한 가치인데 법제화 된 적이 없어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라며 주의를 환기했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인격권, 평등에 대한 가치, 민주주의 및 무엇이 실제로 법으로 구현되는가를 독일, 미국, 캐나다를 중심으로 비교법적으로 접근하면서 특히 혐오선전조항을 두고 있는 캐나다의 모델에 주목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관련 법 중 괴롭힘의 범주 안에 차별적 괴롭힘이 있으며, 혐오표현의 일부 부분은 차별금지법으로 규율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제는 장차법을 제외하고는 명시적으로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어 법의 공백이 존재함을 지적했다.


이나라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집단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서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혐오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고 한편 처참한 현실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가에 대한 언로는 소수자에게 막혀있으며,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혐오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혐오는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그것에 의해 상처받거나 피해 받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Ⅳ. 소고


토론회는 장장 5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논의는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을 수는 있어도 심도 있는 논의와 다양한 대응 방법이 제시되었다. 긴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며 경청하는 200여명의 청중을 보면서 토론회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필요성을 실감하였다. 이러한 논의가 더욱 심화되어 실질적인 대응 방안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_김예슬(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년, 희망법 2016년 동계 실무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