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희망법 회원행사 <위로공단> 상영회- 복순 언니를 기억하다
2015 희망법 회원행사 <위로공단> 상영회- 복순 언니를 기억하다
"2015년 10월 15일 희망법 회원의 날 행사로 영화 <위로공단> 상영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상영회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상영회에 참석해주신 분 중 한 분이 소중한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9.19(금) 오후 5시 5분 까톡까톡이 울려댔다. 레사로부터의 까톡이었다.
“위로공단 보심? 10월 15일 희망법에서 회원행사로 서울아트시네마서 행사함. 자리 여분 있으니 신청해주심 되요~ 후원자가 되실 분들 환영. 소피* 언니랑 오셔도 좋고. 신부님이나 수사님 초대도 좋을 듯~ㅋㅋ”
돈은 별로 없지만 공짜영화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손을 번쩍 들었다. 몇 달 전에는 지역조사차 충정로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희망법 사무실에 가서 차 한 잔 마신 기억과 페이스북에 종종 올리는 레사밥상을 먹는 사람들도 기억나고 해서 희망법 후원행사가 낯설지가 않았다.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회원행사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상영회. 7~80년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감정노동자까지 모두 여성노동자들의 낮은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때는 몰랐고 그래야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이 그때 왜 그랬을까하는 담담한 목소리에 피울음이 묻어나온다. 스크린에서 인터뷰하는 여성들은 내 이야기인 듯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이야기인 듯 모두 익숙하다.
어릴 적 우리집에는 식모 복순 언니가 있었다. 우리집도 그리 잘 사는 집이 아니었지만 단지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시골 외가동네 끝자락 작은 초가집의 10남매 중 맏이 복순 언니가 우리집으로 보내졌다. 초등학교 입학 전 복순 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가발공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되돌아왔고 아마도 밀린 임금을 받으러간 것 같다. 그 공장은 성수동쯤이 아닐까 싶다.
희망법이 마련한 <위로공단> 상영회에서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복순 언니의 얼굴을 만났다. 특히 가발공장 작업 장면에서는 어릴 적 나를 업어 키웠던 복순 언니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복순 언니는 20살 조금 넘어 돈 많은 집의 바보 아들에게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갔다. 아들을 하나 낳았으나 불행한 결혼이었고 결국 “술집작부”가 되었다는 시골어른들의 수군거림이 내가 기억하는 복순 언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복순 언니는 잘 살고 있을까?
관객과의 대화 중
<위로공단> 상영 후에는 임흥순 감독과의 대화시간으로 이어졌다. 미술전공자답게 영상과 오브제를 적절히 섞어서 주제에서 오는 묵직함을 덜어낸 듯싶다. 느리고 낮은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감독의 성품을 보니 가볍고 유쾌상쾌통쾌한 재미난 작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만들 것 같지만 <위로공단>은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상영관 앞좌석 일부가 비어있었다. 맨 앞줄까지 희망법 후원회원으로 꽉 찼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극장에서 내린 <위로공단>을 스크린으로 상영하여 부활하게 만든 공익변호사모임 희망법에게 감사 의미로 정기후원약정서를 내밀며 극장 문을 나섰다. 행운권 추첨함으로 변신했던 빨간 고추장통의 위엄만큼이나 희망법의 매콤한 위엄을 기대하며 다음 회원 행사에는 전석매진 꽉꽉 차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글_별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