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그곳에 가면
그곳에 가면 장애인 단체가 있다.
장애인 단체가 모여 있는 당산동
8월부터 매주 하루씩 충정로가 아닌 당산동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당산동에는 장애인 단체 10여 개가 모여 있지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등, 장애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단체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요청
7월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로부터 파견 요청을 받았습니다. 파견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 것 같고 1주일에 하루나 이틀 당산동으로 나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서는 장애차별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는데, 상담 내용 중에 법률 자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각적으로 상담에 대처하기 위해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장 속으로
희망법을 만들 때 우리는 현장 가까이에서 활동하는 것을 활동 방향으로 삼았습니다. 장애인 단체들이 모여 있는 당산동은 우리가 생각하던 현장이었습니다. 모임을 꾸려 나가기에 부담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흔쾌히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이슈가 있다
기대 반, 걱정 반
파견을 결정하고 살짝 가슴이 뛰었습니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장애인 단체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산동에 가더라도 할 일이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상담 전화는 많은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산동까지 가서 충정로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장애 이슈가 모이는 당산동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장애 이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들이 있다 보니 장애와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이곳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의 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취재하던 기자, 장애인 참정권 보장에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장애 당사자 등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가 모이는 데에는 오랜 기간 장애 운동을 하면서 다져진 활동가들의 힘이 있었습니다.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변호사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활동가들은 법적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5년 동안 근무한 세차장을 그만둘 때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지,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은 내용을 문서로 받을 수 있는지, 25년 전 복지시설에서 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고, 답을 찾아 드렸습니다. 그때마다 들었던 이야기는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만들어야 할 제도가 있다
개정 민법에 따른 법률용어 개정
일할 거리가 자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3년 7월부터 성년후견제가 도입됩니다. 성년후견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피성년후견인 등에 대한 자격제한과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 국가공무원법 등에서는 자격의 결격사유로 금치산자·한정치산자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들에서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용어가 단순히 피성년후견인·피한정후견인으로 바뀌게 되면 피성년후견인 등에 대한 자격제한이 존속하게 돼 성년후견제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할 방안을 마련하는 회의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 참정권 보장
그 밖에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설 기회도 있었습니다. 매번 선거가 끝나면 장애인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합니다. 진선미 의원실 등이 주관하여 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토론회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추천으로 토론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거용 보조용구의 개발 필요성과 시설 내 거소투표과정에서의 대리투표 문제 등에 대해서 발표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공직선거법의 개정 필요성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곳에 가면 고민거리가 있다
일상적 연대를 실현할 변호사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파견 활동을 나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것입니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변호사는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장애인 단체에서는 그런 변호사를 만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때그때 물어볼 수 있는 변호사가 많지 않은 것은 왜일까요? 앞으로의 활동에서 저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장애 당사자를 대변할 변호사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청중 질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두 분의 활동가가 각각 장애인의 투표소 접근권과 시설 내 장애인의 거소투표 과정에서의 대리투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사실 지적이라기보다는 울분에 가까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저에게 주어진 토론시간이 그 울분을 전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 당사자의 이해를 대변하기에는 아직 제가 모르는 게 많습니다.
고민의 시작
이제 제 고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당산동으로의 출근을 계속하려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글_김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