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연 장애인의 천국인가 -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한국 국가보고서 심의 참관 활동기
(사진 출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 연대 https://www.facebook.com/crpdkorea)
지난 9월 17일과 18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첫 국가보고서 심의가 열렸습니다. 희망법의 김재왕, 류민희 변호사는 이 심의를 참관하며 우리나라 얼굴에 먹칠을 하고 왔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 국가별 이행보고서 심의
우리나라는 2009년 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을 비준했습니다.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은 협약이 발효한 지 2년 안에 협약의 이행에 관한 보고서를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위원회는 전문성을 가진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원회는 당사국의 보고서를 검토하여 당사국에게 필요한 제안과 권고를 합니다.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궁금하다면
○ 우리나라의 국가보고서 - 한국은 장애인의 천국
우리나라는 2011년 첫 국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국가보고서의 내용은 훌륭합니다. 보고서에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과 정부의 정책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이 잘 지켜진다면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정말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실제로 심의에서 어떤 위원은 한국이 장애인의 천국 같다고 했습니다.
○ 장애인 단체의 민간보고서 - 한국은 장애인의 천국?
하지만 실상은 국가보고서와는 다릅니다. 법에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2천 명이 넘게 수용된 시설이 있습니다. 법에는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시외 이동권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 단체들이 작성한 민간보고서에는 국가보고서를 반박하고 우리나라 장애인의 현실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나라가 협약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하여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려는 것입니다.
○ 사이드 이벤트 - 위원들에게 쪽집게 강의하기
위원회의 심의는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그 사이 2시간의 점심시간 중 1시간 동안 민간 단체들의 발표가 있습니다. 이를 사이드 이벤트라고 합니다. 사이드 이벤트에는 관심 있는 위원들이 참석해 민간 단체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합니다. 여러 명의 위원들에게 문제점을 알릴 수 있기 때문에 이 1시간은 매우 소중합니다. 시간이 짧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주요 문제를 압축적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재왕 변호사가 장애인권리협약 심의 사이드 이벤트에서 발표하는 모습
17일 점심시간에 장애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정신병원에서의 인권침해, 탈시설, 고용과 교육 문제 등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염전노예 사건과 같은 착취, 폭력, 학대 문제 등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들은 위원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 건물 접근성의 문제, 상법 제732조의 정신적 장애인 보험가입제한 등에 대해 질문했고 민간 단체의 추가 답변이 있었습니다.
○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심의
17일 오후와 18일 오전 우리나라의 심의가 있었습니다. 심의는 세 차례에 걸친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위원들은 돌아가며 한 번에 서너 개씩 질문을 던졌습니다. 장애등급제를 유지할 것인지, 정신보건법의 비자발적 입원 규정을 유지할 것인지,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잘 지켜지는지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정부 대표단은 위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했습니다. 장애등급제에 대한 답변 등 몇몇 답변은 기존의 정부 태도를 반영한 것이어서 알맹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또 시외버스 이동권이나 건물 접근권에 대한 답변은 사실과 달라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선거권 박탈 조항 폐지 등 긍정적인 답변도 드물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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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들에게 맞춤형 1:1 과외하기
심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참관단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아침마다 한국의 국가보고관인 몬티안 분탄 위원을 만나 주요 사안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위원들의 개별 관심사를 파악하고 그 관심사에 맞추어 우리나라의 주요 문제을 설명하고 정부 대표단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질문안을 건냈습니다. 이런 작업은 심의 중간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위원을 붙잡거나 위원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이메일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류민희 변호사가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 마지막 총정리 - 정부 답변에 대한 반박 자료와 권고안 제공
심의를 마친 후에는 정부 대표단의 답변 중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부분을 지적하는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권고안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문제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정리된 자료를 위원은 물론 권고안 초안을 작성하는 직원에게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최종 권고안은 위원회의 회의를 거쳐 10월 초에 공개됩니다.
○ 앞으로의 과제
위원회의 심의는 국회 국정감사와 여러 모로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장애 문제에 관심과 전문성이 있는 위원들이 심의한다는 점에서 질적 수준은 높았습니다. 정부 답변이 많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답변을 들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장애 사안을 접하고 공부했다는 점과 장애 활동가와 교류하고 협력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위원회에서 어떤 권고를 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그 권고 내용이 잘 이행되도록 감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협약을 꾸준히 활용해서 협약이 규범력을 갖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자유권 조약이나 사회권 조약의 심의에서도 장애 문제가 거론될 수 있도록 활동할 필요도 있습니다. 1주일 동안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앞으로 7년 동안 해야할 일을 알게 된 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