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의 기억
‘희망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의 기억
영화 변호인에서는 두 종류의 변호사가 나온다. 유, 무죄를 다투는 변호사와 형량을 다투는 변호사. 영화에서는 후자의 변호사가 부패하고 불의한 법조계의 일부처럼 묘사되지만, 무엇이 그 당시, 그 피고인에게 더 유리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무엇이 구체적 정의이고 부패인지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나에게 공익변호사의 길이 어떤 길인가에 대한 고민은 앞의 불확실과 연결되어있다. 더 이상 나열하기조차 민망한 무수한 비극을 만들어내는 체계 속에서 나는 비극중 하나인 당사자와 거기서 생존해야하는 나를 위해 어디까지 타협해야 하고 어디까지 거부해야하는가. 나에게 희망법은 이와 비슷한 고민들 속에 실천이 있는 장소였고 이곳에서의 다양한 경험들 그 자체로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1. 재심 기록과 재판 방청
개별 과제와 재판방청에서는 재심기록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무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재심기록을 본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과거사 문제를 사법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재판은 생애 처음으로 방청한 재판임과 동시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재판이었다. 장시간 동안 지속된 프레젠테이션에서 검찰 측은 지루했고 피고 측은 통쾌했다.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피고인의 진술을 듣는 동안에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였다.
2. 다양한 방법들
꼭 재판이 아니더라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볼 수 있었다. 희망법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주관한 ‘수능시험 편의제공 개선을 위한 시각장애학생 증언대회’ 는 직접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행사였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직접 수능문제를 푸는 영상을 보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의 제공의 필요를 즉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뚝딱 만들어내는 변호사님들의 실력에 감탄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 문제를 국가 인권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접할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를 작성해보고 강평 받으면서 기본권의 쟁점들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제절차를 배울 수 있었다. 또 진정서 과제와 여러 교육들을 통해 인권에 대한 국제기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직 인권의 감수성이 부족한 한국 실정법 체계에서 국제기준을 알고,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은 꽤 유용할 것 같다.
3. 따뜻한 구성원
희망법 사무실은 항상 웃음이 넘쳤던 것 같다. 희망법 구성원들이 직접해준 점심은 뭔가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배고픈 자취생에게 가정식 음식은 실무수습 중 가장 보람된 것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한가람 변호사님의 떡볶이가 최고였다.
변호사님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 대한 고민을 동료들과 공유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그 틈틈이 오가는 대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맡고 계시는 사건들을 지금 내가 맡고 있다면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동시에 내게 많은 공부가 절실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희망법’에서의 3주는 정말 빨리 지나갔다. 더 많이 얻고 싶었고 더 많이 주고 싶은 실무수습이어서 3주의 시간은 빡빡했다. 그 빡빡한 시간은 막연히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 관심을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알게 했고 방학의 관성적인 게으름과 스스로 싸워야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희망법에서의 기억들은 오랜 시간 생생하게 남을 것 같다.
글_양성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