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대한 규제와 표현의 자유 토론회 참가기
차별의 표현, 표현의 차별
-혐오에 대한 규제와 표현의 자유- 토론회 참가기
그동안 조롱의 대상은 보수였고 표현의 자유는 진보의 무기였다. 공공이익을 위한 규제라며 보수는 진보의 표현을 단속했다. 진보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이 권리가 가지는 보편적인 속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최근 일베 사건과 여러 영역에서의 혐오표현을 보면서 표현의 자유가 가진 보편성이 오히려 이를 주장하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자아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권이다. 자유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권리이다.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적어도 발언할 권리는 평등하게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진보는,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를 비판 혹은 비난하는 일베를 막고 싶지만 그들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었다. 그들을 막기에는 자신의 논리가 뒤집히는 문제가, 그들을 그대로 두자니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토론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한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토론은 크게 두 영역이었다. 첫 번째 장은 표현에 자유에 대하여 분석하였고, 두 번째 장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하여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발제자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으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 표현이라 함은 표현에 그치는 것이 있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표현의 경우에는 제한이 가능하다. 이러한 바탕에서, 비록 일베의 표현물일지라도 그것이 의사의 표명에 그칠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고 그것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을 때에는 규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토론이 이루어진 부분은 첫 번째, 어떤 표현들이 사회적 영향을 미칠만큼의 힘을 가진 것인지와 두 번째, 영향을 미친다는 ‘사회’의 범위 즉 공공영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라는 점이다. 발표자는 일베와 같은 말하기가 가지는 영향력을 낮게 평가하였고 규제가 필요한 공공영역의 범위는 전통적으로 공공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방송’매체를 들었다. 질문자들은 그러한 표현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여 이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규제대상이 되는 공공영역을 방송에 한정시키지 않고 인터넷까지 넓게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며 이 필요성은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규제의 방식은 사법적 방법과 비사법적 방법이 있는데 이중 비사법적 방법 또한 적극 활용하여야 함을 강조했다. 사회적 자정작용을 통해 시민사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혐오표현의 문제는 그 사회의 문화, 감수성과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문화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발제자의 논의에 대한 의문 첫 번째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점이다. 이 장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차별금지법’이 난항에 부딪쳤는가 하는 것이다. 나치를 반성하려는 다수의 독일인들과 소수의 나치추종자들이라는 정치구도 속에서 인종주의를 규제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과, 구성원 대부분이 성소수자에 대해 혐오를 가지고 있고 매우 소수만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분명히 다르다.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있다. 그렇다면 이 혐오표현에 대한 합의는 시민사회에서 먼저 이루어야 하는가, 입법 등을 통해 하향식 운동으로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따라오게 된다.
두 번째, 토론자들은 주로 활동가로써의 경험에 기반하여 혐오발언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혐오표현 그 자체가 즉시적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나쁜 생각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이 확산될 가능성이 없을 때 나쁜 결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혐오표현을 둘러싼 관계와 구조가 어떻게 이 표현을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하는지의 과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세밀한 분석 없이 표현을 규제하자 혹은 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근거 없는 비슷한 두 개의 선택항 앞에 서있는 것과 같다.
또한 혐오표현을 담고 있는 예술에 대한 규제라는 주제에서는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부딪치는 두 권리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 분야의 토론자는 표현의 내용과 방식을 분리하여 내용은 예술의 자유로 보호하되 그 방식이 소통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은 공격적인 것이라면 예술로 볼 수 없다고 하였으나, 예술이 내용과 전달방법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적용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각 영역에서 혐오표현의 규제라는 주제를 가져갔을 때 끊임없이 맨 앞의 문제, 표현의 자유와 어떤 관계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일베’ 등의 일련의 사건에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동안 진보파가 가졌던, 스스로가 옳고 이성적이며 더 나은 가치를 말하고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서 이전과 다른 배제집단들이 떠올랐다. 과거 민주 대 반민주, 자본과 노동 등의 커다란 문제가 갈등의 축이었다면 혐오발언으로 떠오르는 이들은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다. 표현의 자유는 그 이전에 각 정치집단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집단이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정치의 장에 들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현의 장은 언제나 일그러져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을 때 나타나는 불편함들은 일종의 ‘증상’이다. 증상을 읽고 그리하여 어떤 이들이 말하기의 장에서 밀려나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혐오발언은 어떤 소수자들을 시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이들의 바람의 표현이다. 증상을 완화시킬 것인가 뿌리를 찾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증상을 읽고 이 일그러진 거울의 뒷면을 파헤쳐나갈 출발점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_정진아 (2013년 희망법 여름 실무수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