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연구 1
출처 : http://www.austincc.edu/hr/profdev/eworkshops/ADA/
김동현 변호사는 2013년 3월 중순부터 한 달간 연구월을 가지고 이 기간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부터 4회에 걸쳐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Ⅰ.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의 Ⅱ. 정당한 편의제공과 간접차별,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Ⅲ. 외국의 정당한 편의제공 Ⅳ.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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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정당한 편의제공의 의의
1. 정당한 편의제공의 개념
정당한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이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평등한 환경에서 의욕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애에 따른 여러 환경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수단을 말합니다. 정당한 편의제공은 주로 장애차별영역에서 법제화되어 있는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정당한 편의를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2항),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를 차별행위로 구성하고 있습니다(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 제3호).
2. 정당한 편의제공 개념의 형성과 발전
정당한 편의제공은 비단 장애사유만을 한정하여 생성된 개념은 아닙니다. 육체적 또는 사회적 환경과 장애, 성, 종교, 믿음 등과 같은 고유한 특성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그러한 특징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고용의 기회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반차별 법제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를 차별로 규정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당초 종교행위에 대한 보장에서 시작된 정당한 편의제공 개념은 실질적으로 장애영역에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1) 종교차별영역에서의 개념의 형성
1) 미국 민권법의 규정(1964)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화하려는 최초의 노력은 1960년대 종교차별과 관련된 사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64년 미국 의회는 25인 이상의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인종, 성별, 국적, 피부색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민권법 제7장(Civil Rights Act 1964)를 의결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종교를 근거로한 차별은 금지되었으나 (1) 진정직업적격(bona fide occupational qualification, BFOQ)이 있는 경우 (2) 고용자가 교회거나 교회가 소유한 학교거나 학교의 특정 커리큘럼이 특정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것일 경우에는 고용주가 종교를 고려할 수 있음을 규정하였습니다. 위 조항에는 종교적 필요로 정당한 편의가 규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적 이유로 특정 업무시간에의 근무를 거부하는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민권법 제7장의 차별금지원칙에 저촉되는 행위인지에 대한 판단하여 달라는 신청들이 고용평등위원회(EEOC)에 제기되었습니다.
2) 미국 고용평등위원회의 지침
고용평등위원회는 1966년 업무스케줄과 종교 의식간의 갈등에 관한 신청들에 대한 답변으로 “제7장의 반차별지침은 해당 사업의 심각한 불편(serious inconvenience)이 없는 경우에 근로자의 종교적 필요에 따라 정당하나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고용주에게 부담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해석지침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1967년 위 지침상의 ‘심각한 불편(serious inconvenience)’을 ‘과중한 부담(undue hardship)’으로 개정하였습니다. 즉 1964년 민권법 제703조 a항 (1)호의 종교를 이유로한 차별금지의무는 고용주의 사업수행에 있어 과중한 부담이 없는 때 근로자의 종교적 필요에 따라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할 의무를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3) Dewey v. Reynolds Metals 판결
그런데 미 연방대법원은 Dewey v. Reynolds Metals 판결에서 고용평등위원회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의 부여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위 판례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앙개혁교회(Faith Reformed Church)의 교인인 원고 듀이는 피고 레이놀즈 금속주식회사 소유의 공장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원고가 신봉하는 신앙개혁교회는 교리상 일요일 근무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와 노동조합(UAW) 간의 단체협약에 피고가 일요일 잔업의 경우 연공서열에 따른 잔업할당권한을 보유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피고는 이 조항을 ‘잔업을 피하고자 하는 근로자는 자신의 추가근무배정을 타 근로자에게 하여야 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는 원고에게 6개월 동안 5번의 일요일 추가근무를 배정하였지만 원고는 자신이 일하지 않은 것은 물론 타인에게 주일근무를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이유로 근무배정을 거부하였고 결국 이러한 사유로 해고되었습니다. |
이 사건을 심리한 제6 순회 항소법원은 “민권법 제7장 법률의 입법경위는 차별적 관행의 해소인 것은 분명하나, 단체협약 상의 강제 추가근무 규정은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피고 Reynolds는 원고를 차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위 법원은 “민권법 제7장에는 종교적 사유로 인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여하는 조항이 없으며 입법자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여하고 하는 입법의도 또한 발견되지 않는다”며 고용평등위원회 지침에만 존재하는 정당한 편의제공의 법적 근거가 없으며 민권법 제7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 판결로 인하여 민권법 제7장의 차별금지규정에 근로자의 종교행위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가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의문이 남게 된 것입니다.
4) 미국 민권법의 개정
미국 의회는 위 Dewey 판결의 판시내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1972년 민권법 제7장을 개정하였습니다. 즉 “종교”의 정의조항에 1967년의 EEOC 지침상의 편의제공원칙의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종교란 고용주의 사업 수행에 현저한 곤란이 없는 경우 현재 내지 장래의 근로자의 종교의식 혹은 종교행사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입증하지 않는 한 모든 종교적 의식 및 종교 행사뿐만 아니라 신념을 포함하는 개념이 됩니다.
5) 미 연방 대법원의 과중한 부담의 축소해석과 고용평등위원회의 지침 변경
미 연방대법원은 1977년 Trans World Airlines v. Hardison 사건에서 과중한 부담(undue hardship)을 축소 해석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Hardison이 주장한 정당한 편의의 내용은 사용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야기시킨다며 미소 기준(de minimis) 이상의 편의제공은 사용자에게 부당한 곤궁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축소해석이 있은 후 고용평등위원회는 과중한 부담의 해석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였고 1980년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게 됩니다.
(2) 장애차별영역에서의 발전
1) 미 재활법과 장애인법
종교영역에서 처음 생성된 편의제공의무의 관념은 장애영역으로 확장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이 최초 규범화 된 것은 미국 재활법(Rehabilitation Act 1973)입니다. 위 법은 연방 차원의 계약, 고용관계 및 연방 재정의 프로그램과 관련되어 장애를 가진 개인(handicapped individuals)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동법 32.13조 (a)항에서는 정당한 편의제공의무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에는 이 재활법의 영향을 받아 정당한 편의제공을 규율하였는데 일반적 정의조항이 아닌 정당한 편의제공의 구체적 유형을 법에 명시하였습니다. ADA가 명시한 정당한 편의제공의 구체적 유형은 (a)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기존 시설에 장애인이 쉽게 접근·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 (b) 업무조정, 파트타임이나 작업일정변경, 공석으로의 재배치, 설비·장비의 획득 개조, 시험평가·교육훈련교재 또는 정책의 적절한 조정·변경, 자격이 있는 낭독자나 통역자의 제공, 기타 이와 유사한 장애인을 위한 편의입니다.
2) 정당한 편의제공 규정의 확산
이와 같은 미국의 경향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유엔의 경제‧사회‧문화권 위원회(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는 채택한 “장애인 에 관한 일반언급 제5호”에서 “장애를 근거로 한 차별”(disability-based discrimination)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의 인정‧향유 또는 행사를 무효화 또는 손상시키는 것으로서 장애를 근거로 한 여하한 구분, 배제, 제한이나 우대 또는 정당한 편의의 거부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하여 정당한 편의 차별을 명시하였습니다.
미국 외의 다른 국가들도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가 차별을 구성한다는 입법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영국은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입법을 평등법 혹은 장애차별금지법에 규정하였습니다. 유럽의 반차별법제에서도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법제화가 이루어졌는데, 유럽연합은 2000년에 고용 평등 기본지침을 채택하여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화하였습니다. 위 지침은 유럽연합의 구성 국가들에게 위 지침을 반영한 자국 법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위 지침 시행 이후 유럽연합의 각 국가들은 이를 반영한 국내법을 제정하였습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정당한 편의제공의 정의와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로 인한 차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3) 소결
정당한 편의제공은 이와 같이 최초 종교행위에 대한 차별개념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차별사유로서 규범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종교 영역 보다는 장애영역이었습니다. 정당한 편의제공 개념이 최초 생성된 미국에서 종교 영역에 비하여 장애행위에 정당한 편의제공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점은 미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즉 종교행위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은 미 연방 수정헌법 제1조의 위반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행위에 편의를 강제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 위반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혜택을 제한하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애와 관련된 결정에서는 정당한 편의제공의 부여에는 보다 넓은 해석이, 과중한 부담의 부여에는 보다 좁은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3. 정당한 편의제공의 유형
정당한 편의제공은 제공 청구자의 집단, 의무자의 대응을 기준으로 ‘대응적 편의제공(reactive reasonable accommodation)’과 ‘예측적 편의제공(anticipatory reasonable accommodation)’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응적 편의제공은 전적으로 개별적이며 대응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자가 대면하고 있는 개인의 특정 요청에 대해 편의를 제공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비하여 예측적 편의제공은 예측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현실적 차별주장자(장애인 등)에 대한 장애물을 해소할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들이 직면하게 될 장애물을 고려하여 사전에 그러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예측적 편의제공은 집단적, 예측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간접차별과의 구별이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제공을 개인화된 구제수단으로 법제화한 미국, 영국과 반대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예측적 편의제공에 대한 비판의 의견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개인적 구제에 대한 집중이 차별을 받고 있는 ‘집단’이라는 측면을 모호하게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예측적 편의제공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이는 또한 간접차별개념을 규정하지 않았던 영국 장애인법제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영국 장애인법제는 평등법 제정 전까지 간접차별이 문제되는 영역을 정당한 편의제공으로 포섭하여 왔습니다).
한편 편의가 요청되는 단계에 따라 진입 전 단계와 진입 후의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고용영역의 경우 고용 전 단계에서는 시험, 훈련, 선발이, 고용 이후에는 고용의 유지, 승진, 직무재비치 등이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제공되는 편의의 내용에 따라 유형의 편의제공과 무형의 편의제공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설‧장비‧인적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은 유형의 편의제공에 해당하고 근로시간 조정, 제도개선 등은 무형의 편의제공에 해당합니다.
글_김동현
이 글은 김동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헌법적 논의」중 일부를 발췌,수정한 것입니다.